감사의 창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은 고난을 없애면 자동적으로 찾아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다. 행복은 고난을 없앰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에 신뢰가 쌓이는 만큼 찾아지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나이가 예순이 넘었어도 여행할 때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왜냐하면 어딜 가서나 음식을 먹을 때 먼저 강아지에게 먹여서 이상이 없어야 먹었다는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누가 독약을 넣지 않았을까 하고 의심하고 먹어야 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여자들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남편들을 의심할 때가 있다. 아담이 며칠 동안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자 마음이 심란해진 이브는 "당신 다른 여자들이랑 있다가 온 거죠?"라고 따졌다.

아담이 대답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마. 세상에 당신 말고 여자가 어디 있다고 그래."

말다툼은 이브가 잠들었을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아담은 결국 누군가가 그의 가슴을 콕콕 찌르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이브의 짓인 것을 보고는 "뭐하고 있는 거야?" 하고 아담이 다그쳐 물었다. 그러자, 이브가 하는 말, "당신 갈비뼈를 세고 있어요."
그렇다고 의심은 여자들만의 전유물일까? 채필근 목사가 쓴 「재미난 이야기 철학」이라는 책에는 ‘의심’에 대해서 재미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어느 목사님이 신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한번은 고향에서 쓸 일이 있어 35원(당시 쌀 두 섬 값)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 어두워지자 길가 어느 주막집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그런데 한 밤중에 다른 손님 한 사람이 들어와서 할 수 없이 합방을 하게 되었다.  너무 피곤해서 미쳐 인사할 시간도 없이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자꾸 그 손님이 수상하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벽에 걸어놨던 양복을 벗겨서 이불삼아 덮고 시계는 풀어서 돈주머니와 함께 내복 속에 감추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어 저쪽이 부스럭거리면 이쪽도 안 자고 있다는 표시로 캠하고 헛기침하고, 저쪽도 이쪽이 의심이 되는지 헛기침을 했다. 그런 식으로 서로 의심을 하다 보니 그날 밤 두 사람 모두 한 잠도 못 잤다.
새벽이 되어서 날이 환하게 밝아 오자 목사는 무릎을 꿇고 아침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는 데 그 손님은 그 목사의 거동을 엿보고 있다가 "손님, 예수님을 믿으시는가요?"라고 물었다. 그래서 "예"라고 했더니 "나도 예수님을 믿어요. 이제라도 서로 알고 지냅시다"라고 했다.
알고 보았더니 그 사람은 어느 교회의 영수, 요즈음으로 말하면 장로 직책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사람도 장으로 소를 사러 가노라고 돈 500원을 가지고 있었기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니 얼마나 서로 기가 막혀 웃었겠는가?  의심은 작은 오해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오해란, 눈에 보이는 행동과 말만을 보고 판단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채 자기 기준으로만 상대를 바라보기 때문에 더 크게 오해가 쌓여만 간다. 그래서 오해를 풀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다 동원하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고 도리어 실이 꼬이듯이 더 오해가 깊어진다.
서로 간에 신뢰가 바탕이 되어 오해와 갈등이 해소될 때 비로소 의심의 안개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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