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교도관 생활에의 회고(27)

인천에 소재했던 소년교도소가, 1990년 소년 처우에 적합한 새로운 시설을 천안시 성거읍에 마련하고 옮겨 갔다. 이후 인천소년교도소 는 인천구치소로 그 기능을 전환하여 운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시설의 노후화 및 과밀수용 실태에 직면하게 되자, 시설 인근의 구치소 소유 부지에 11층에 이르는 고층 구치시설을 신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97년 9월에는 이 시설이 거의 완공되어 이전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바, 바로 그 즈음에 나는 그 곳의 보안과장으로 보임되었었다. 기관장이 부이사관인 대규모 시설의 경우, 주요 보직인 보안과장은 타 과장들 보다 한 직급 위인 교정감 (서기관)으로 배치한다는 법무부의 변경된 인사방침 때문이었다.

어쨌건 83년 인천을 떠났으니, 14년 만에 되돌아와 마주하는 모든 것들에서 묻어나는 감회는 남달랐다. 교도관으로 출발을 발디딤 했던 그때의 열정과 간절함, 그 들떳든 첫 마음과의 조우가 그러했고, 하얀 벽에 손때가 타 듯 흐른 시간과 기억에 대한 사유가 곳곳에 묻어 익숙한 흔적들이 또한 그러했다.
그러나 그리 오래 내 감정에 치이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당면하고 또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만만찮게 노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3천명에 육박해 오는 수용인원을, 밀면 허물어질 것만 같은 노후한 시설에 집금. 수용하여 끌어안고 버티자니, 보내는 하루 하루는 마치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긴장감으로 점철되었다. 

바쁜 마음에 새시설의 도면을 펼쳐두고 이전을 위한 계획을 머리에 그려 보기도 했으나 실물을 접해 보지 못했으니 낯선 요소에 대한 우려만 깊어질 뿐, 일상을 파고든 답답함과 조급함이 덜어질 리 만무했다. 보름이 더 지난 뒤에야 이윽고 신설 구치소의 완공을 통보 받았다. 이제야말로 미리 수립해 둔 일별, 주간별 계획에 맞추어 새 시설에 대한 보안상 하자의 점검.파악 및 보완작업을 치밀하게 시행해 나가야 할 것이었다.
별도의 시설점검반을 편성. 운영함과 동시에 모든 직원들로 하여금 퇴근 전 반드시 새 구치소의 전반을 한 번씩 돌아보도록 했다. 될수록 빠른 시일내 에 시설의 구도를 익혀 나가도록 독려한 것이다. 

나 또한 하루에 한 번씩 11층이나 되는 그 시설을 오르내리며 수 없이 많은 발품을 팔았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는 결코 그 미로와 같은 시설의 구도와 속내를 눈과 뇌리에 담아내기가 불가능했다. 공간을 구획하고 안과 밖의 경계를 긋는 모든 벽들은 가까이 다가가 그 위에 손을 대어 보고서야 비로소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쉬지 않고 오르내렸다. 무릎에 견디기 힘든 통증이 밀려 왔으나 진통제를 먹으며 오르내렸다. 마치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는, 이 높고 넓은 건물의 속살을 그야말로 이 악물고 헤집었었다. 그러나 그리해도 퇴근 후 잠자리에서 눈을 감아보면 아직껏 한눈에 다가들지 않는 11층 구치소의 형상으로 인해, 몸살을 앓듯 노상 불면의 밤을 뒤척여야 했다. 
이래서야 재소자의 이송은 커녕, 계호 및 경비 직원들의 배치조차 불가능할 터였다. 

자고로 보안과장이라면 당해시설 전체를 단번에 조망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 어느 자리 어느
구석이 만들어가는 움직임 하나까지도 손쉽게 머리에 그리고 있어야 할 것이었다.
부지런을 떨어 더욱 빈번히 순시를 돌았다. 사동별 시건장치의 오류 및 차단시설 불비 등 수백 건의 보안상 하자 부분들을 색출하고 보완공사를 완료했을 무렵에는 거의 한 달의 날짜가 더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서야 비로소 시설의 모든 것이 눈과 마음에 익숙하게 자리 잡아왔다. 모든 층 어느 구석의 시설물 하나도 모호함이 없이 거의 내 눈에 명료하니, 그 성취감을 얻기까지의 땀 흘림이 사뭇 기껍기만 했다.

그러나 결코 그것으로 끝낼 일은 아니었다. 나는 간부 20여명을 건물 맨 위 11층에 집합시켜두고 지시했다.
「지금부터 우리의 신분은 교도관이 아닌 재소자다. 이 복도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탈주를 시도해 보자. 영화적 상상력까지 동원하여 최선을 다해 도주로를 만들어 가보자. 아마도 우리가 놓쳐버린 사각지대가 필히 존재할 것이다. 1시간 후 1층에서 집합한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림이 없었다. 훈련 후 지적된 현장을 확인하니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여러 곳에 빈틈들이 숨겨져 있었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해 방치된 보안의 구멍들은 여지없이 흰 이빨들을 드러내며 웃고 있어 그저 모골이 송연할 따름이었다. 제1선의 경계망이 그렇듯 허망하게 누수 되고 있었음이 적잖은
충격이었으나, 그나마 사전에 발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예정된 이송을 보류한 뒤, 수일에 걸쳐 조적작업과 철격자 설치, 감시카메라의 이동 배치 등 문제점들을 꼼꼼히 재점검하고 보완작업을 완료하였다.
드디어 그해 11월, 이송 계획을 빈틈없이 수립한 뒤 3,000여명의 재소자들을 새로운 시설로 무사히 이송. 수용하니, 교도관과 재소자 모두에게 생소하기만 한, 이른바 고층 구치소가 그 운용의 첫걸음을 내디디게 되었다.

       이태희 (전 법무부 교정본부장/ 현 사단법인 대한민국 재향 교정동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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