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교도관 생활에의 회고(29)

아니나 다를까 올 연말에도 B회장의 선물은 어김없이 도착하여 현관문의 벨을 울렸다. 올해는 정성스레 포장한 수삼을 보내 왔다. 물경 25년 째 지속되고 있는 이 호의는, 마주하여 반가우면서도 늘 가슴 한 켠에 미묘한 감응을 불러온다.
그러나 또한 그 선물들은, 스스로의 성취와 자부심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그의 소박한 심기를 품고 있는 듯도 해, 몸과 마음에 전해지는 따스함이 적지 아니 기꺼웠다.
돌이켜보노라면 B회장과의 인연은 교정시설에서 배출되는 한낱 잔반에서 비롯되었으나, 그 궁상스러움을 덮어 온 마음의 부침들이 훈훈하여 다시 돌아봄이 싫지는 않다.

인천구치소 3,000여명의 재소자들이 식사 후 남기는 음식물의 양은 만만치 않았다. 이전과 달리 재소자들의 경제적 여유가 나아진 터라, 영치금으로 통닭이며 각종 과자류 등 군주전부리를 구매•취식하는 것으로 무료한 시간들을 때워 나감은, 이제 일상화된 그네들의 생활패턴이었다. 
거기에 더해 재소자 처우의 개선으로 고기가 빠지지 않는 일식삼찬의 흰 쌀밥을 방별로 자유배식 할 수 있도록 가득 넣어주고 있었으니 그 밥이 남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기실 정량의 급식 외에 그런 따위의 과잉 배려가 애초에 내 눈에는 마땅치 않았었다. 범죄에 대한 응보를 본질로 하는 교정시설의 정체성을 훼손시킴은 물론, 영치금의 다과(多寡)로 인한 재소자간 위화감의 조성과 영치금 갈취행위 발발 등의 부작용이 어차피 내재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판결확정시까지 무죄 추정을 받는 미결수용자에게는 응당 주어져야 할 처우라는 주창이 앞서니, 승복은 하되 그 행태를 지켜봄은 늘 힘이 들었었다.

어쨌든 구치소가 배출하는 그 많은 잔반은 돼지를 사육하는 사람들이 사료용으로 거두어 가고 있었으니, 그 처리에 대한 고민을 덜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만 잔반을 수거해 가는 조건으로 잔반 중 사료용(밥)과 가지고 가서 버릴 잔류 부식을 철저히 구분에 주어야만 했다. 그래서 비록 잔반이지만 깨끗한 쌀밥이 매일 10드럼통씩이나 모아지고 있었다.
생경하던 고층 구치소의 수용관리도 이제는 안착되어 한시름 놓고 지내는데, 뜻밖의 내방객이 면담신청을 해서 방에 들이니 그가 바로 지금의 B 회장이었다. 인천시 K군의 장애인협회 총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잔반 수거에 대한 애로 사항을 토로해 왔었다. 

사연인 즉은, 이미 오래 전부터 K군의 장애인협회에서는 인천구치소로부터 매일 5 드럼통씩 잔반을 받아 돼지를 사육해 왔었는데, 요 며칠 전부터 갑자기 2 드럼통 만 주고 있어 돼지의 사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바,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었고 도무지 그 연유를 모르겠다며 사뭇 흥분된 어조로 얘기했다. 아울러 장애인이라고 홀대하는 것만 같아 섭섭하다며 살펴 봐 줄 것을 간절히 호소해 왔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한쪽 다리를 몹시 절고 있었다.
구치소 배출 잔반이라면 치워주는 것만으로도 다만 감사한 일로 치부해 왔었거늘,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의 어느 한부분도 누구에겐가는 견디기 힘든 핍박과 상처로 다가설 수 있음을 그를 보며 새삼 읽었다. 
진상을 알아본 후 시정하고 통보해 줄 것임을 약속한 뒤 그를 달래어 돌려보냈다.

이후 취사장 관할 감독 근무자를 불러 잔반의 처리 실태를 소상히 파악해 보고, 불우이웃이자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협회에는 종전의 관례대로 차질 없이 수거해 갈 수 있게 조치할 것을 단단히 지시했더니, 며칠 후 B가 찾아 와 감사인사를 하는데 거의 울먹이는듯하여 등 두드려 격려해 주었었다.
그리고는 잊어버렸었는데, 이듬해 7월 법무부 교정과로 전보되어 근무하고 있자니 난데없이 B가 찾아왔다. 그는 작은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직접 채취한 자연산 굴이라며 내 손에 쥐여 주었다. 그걸 주려고 과천까지 그 먼 길을 달려온 정성이야 고마웠지만 그가 안고 사는 삶의 고단함을 아는 터인지라 그의 행동을 나무랬다.
그러나 나의 나무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웃었고, 얼굴 또한 전에 없이 밝아 보였다. 그리고 이제는 돼지사육의 규모가 커져 잔반 대신 사료를 구입하여 운영하고 있다는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그 후로도 B는 내가 어디서 근무하던지 해마다 안부 인사와 작은 선물들을 빠뜨리는 법이 없어 고마운 한편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내가 교정본부장으로 재임 중이던 2009년도에는 그가 K 군의 장애인협회 회장이 되어 취임식을 한다기에 축하 화환을 보내었더니, 주위에서 부러워들 하여 자랑스러웠다는 그의 전화를 받고서는 마음의 부담이 조금은 덜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그 이후 B회장은 여러 가지 사업에도 성공하여 이제 K군의 유지를 자임하니, 파란만장한 삶을 이겨내고 이윽고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자리한 듯 보여 덩달아 뿌듯한 마음일 뿐이다. 공직의 옷을 벗은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그의 안부 전화와 벨을 누르는 선물은 여전하나, 잔반이 계기가 된 그의 의리를 두고 내 삶의 또 다른 성취라고 자부하기란 쉽지 않고 도시 민망할 뿐이다
                   이태희 (전 교정본부장 / 현 사단법인 대한민국 재향 교정동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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