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병영

"너의 편지를 읽기 시작할 땐 내 마음에 꽃이 활짝 피었는데,
 다 읽을 무렵엔 내리는 비에 활짝 핀 꽃이 젖은 흙 위로 뚝뚝 떨어지는구나.
 하지만 그 덕에 곧 열매가 맺히겠구나.
 아들아, 나의 아들이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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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을 찾는지 미안함을 찾는지

100가지 감사, 처음엔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입대 이후, 매일 2가지의 칭찬과 3가지의 감사를 적어왔기에 더욱 쉽게 느껴졌습니다. ‘살아온 지난날이 몇 년인데 100가지 쓰는 게 뭐가 어려울까.’ 생각하며 감사함을 하나, 둘 적어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착각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살아온 삶 속에서 100가지 감사를 찾는 일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쉽게 생각했던 100가지의 감사를 적기 위해 연등 시간과 주말을 포함해 몇 날 며칠을 고민했고 감사한 기억을 찾기 위해 1년 전, 5년 전, 10년 전, 결국엔 기억이 흐릿한 어린 시절까지 떠올려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제 삶 구석구석을 찬찬히 돌아보며 놓쳤던 그리고 잊었던 기억들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기억 또한 마주해야 했습니다. 사진 한 장에 감사한 기억이 새겨져 있다면 네 장, 다섯 장에 미안한 기억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사진들을 들여다볼수록 감사함보단 케케묵은 미안함이 쌓였고, 미안한 기억들은 잊고 있었던 오랜 시간만큼 불어나 어느 순간 제가 감사함을 찾고 있는 것인지, 미안함을 찾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혼자만의 삶이 아니었다

그래도 계속 적어나가도 보니 감사함이 차츰 떠올랐습니다. 잦은 병치레로 잠 못 드는 저를 위해 수많은 밤을 앉아서 지새우신 어머니의 모습, 가족을 위해 새벽부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터로 나가시는 아버지의 모습, 참 모질게 굴었던 못난 형을 남들 앞에서는 좋은 형이라 자랑하는 동생의 모습, 스스로에게 쫓겨 늘 전전긍긍하던 제 삶을 크게 바꿔준 사랑하는 이의 모습, 이렇게 하나, 하나의 감사한 기억들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이런 감사한 기억들 덕분에 여행을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100가지의 감사를 모두 적고 난 후,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늘 잊고 살았던 사실을 한 가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제 삶은 언제나 저 혼자만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서른 살 입대가 준 감사함

서른이라는 늦은 나이에 입대하며 ‘고작 18개월이다. 누구나 다녀온 군대인걸’, 스스로를 다독이며 군복무를 시작하였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사회와 단절되고 사랑하는 이들을 볼 수 없는 일상은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일상으로 오랫동안 적응하기 어려웠고, 대학원과 직장을 오가며 쉴새없이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제 삶이 뚝 끊어진 고무줄처럼 널브러진 기분이었습니다.

어렵사리 100가지의 감사한 일들을 꾹꾹 눌러 적었지만 제 삶에 감사해야 할 일들이 어디 100가지뿐일까요. 수백, 수천 가지의 감사한 일들이 있겠지만 너무나도 많은 감사한 일들을 당연스럽게 여기며 살아왔던 탓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테죠. 감사한 일을 찾아 헤맨 그 며칠간 제 마음은 감사함, 미안함 등 저를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그들을 위한 감정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감사나눔 공모전을 핑계 삼아 부모님께도, 제가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오래 묵은 제 진심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육군용사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기 어려운 요즘입니다. 저 또한 100감사편지를 직접 전할 순 없었지만, 중대장님의 도움으로 편지로나마 전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100감사편지를 읽으시며 분명 붉어졌을 어머니의 눈시울을 보고 저도 눈물을 참지 못해 상당히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을 테니 말입니다.

가족들도 쓰게 된 100감사

또 한 편으로는 아쉽기도 합니다. 모두에게 직접 전했을 때 저와 그들이 함께 느꼈을 그 순간의 분위기와 감정은 어땠을까요. 분명 두 번 다시 마주하기 어려운 귀중한 순간으로 기억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편지를 전하고 며칠 후부터 한 명, 한 명에게 전화가, 편지가 왔습니다. 그리고 감사나눔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군생활 중에도 ‘감사나눔’의 기회가 있었다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고 아쉬움과 부러운 마음을 내비치셨고, 어머니께서는 유독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감사한 기억보단 미안한 기억이 오래 남는 것 같다 하시며 어머니의 100감사를 쓰고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원체 무뚝뚝하셨던 선생님께서는 눈으로는 제 편지를 읽으시면서 마음으로는 감사한 분들을 찾느라, 그리고 그분들께 죄송한 마음에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몇 번이나 다시 읽으셨답니다. 사랑하는 이는 스스로가 대견했고, 한 사람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저의 ‘감사나눔’은 감사한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함으로써 끝이 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감사함’을 선물 받은 이들은 제게 또다시 ‘감사함’을 표했고, 100감사를 읽으면서 자신의 ‘감사함’도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텅 비어버린 듯한 투명한 물에 따뜻한 물감을 한 방울 떨어트린 마냥 저로부터 시작된 ‘감사나눔’은 순식간에 여러 명의 ‘감사나눔’으로 퍼졌고, 그들의 나눔에 또다시 더욱 멀리 퍼질 것입니다.

100가지의 감사함이 몇 가지의 감사함으로 퍼져나갈지 알 수 없지만 생각지도 못한 ‘감사나눔’의 긍정적인 힘은 놀랍기만 하였습니다. ‘감사나눔’을 시작한 누군가는 ‘감사함’을 나누는 것이 이런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삶의 가시밭길을 걷는다면

‘감사함’을 나누는데 기회나 조건이 필요친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나눔’ 공모전이라는 기회가 아니었다면 ‘감사함’을 나눈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알게 된 이상 언제든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되었습니다. 육군용사라면 군복무 중 누구에게나 몸보단 마음이 힘든 나날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별 이유도 없이 마음속이 절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는 날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전국의 육군용사들이 꼭 한 번은 ‘감사나눔’을 실천해보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100가지, 1000가지 감사를 나눈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기에 오랜 시간 동안 감사한 일들을 고민하다 보면, 늘 보고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우리 일상 속의 감사한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답니다. 부정적인 마음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겠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감사한 마음을 떠올리며 절망과 두려움으로 헤진 마음, 텅 빈듯한 마음을 감사로 메꿔가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감사함을 찾다 보면 시간이 굉장히 빨리 지나간답니다!

단지 육군용사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누구든 삶의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이가 있다면 ‘감사함’을 되새기며, ‘감사함’을 방패 삼아 용감하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길 바랍니다. 감사나눔 공모전을 통해 이런 경험을 할 기회를 준 8군단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신 중대장님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저를 사랑하는 이들의 안녕을 빌며 끝으로 오랜 시간 제 마음에 남을 어머니의 말씀으로 글을 마칩니다.

“너의 편지를 읽기 시작할 땐 내 마음에 꽃이 활짝 피었는데, 다 읽을 무렵엔 내리는 비에 활짝 핀 꽃이 젖은 흙 위로 뚝뚝 떨어지는구나. 하지만 그 덕에 곧 열매가 맺히겠구나. 아들아, 나의 아들이어서 고맙다.”

글=이준석 일병(8군단)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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