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오 이동녕 선생의 독립서훈 1등급 대한민국장 추서를 강조하는 서문동 공동위원장
석오 이동녕 선생의 독립서훈 1등급 대한민국장 추서를 강조하는 서문동 공동위원장

지난 3월 14일 천안시는 천안 출신 독립운동가 석오 이동녕 선생 서거 제83주기 추모제를 거행했다. 이날 추모제는 박상돈 천안시장, 서문동 석오이동녕선생 서훈상향범시민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곡, 추념사, 추모사, 헌화와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석오 이동녕 선생이 독립서훈 1등급 대한민국장으로 추서되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서문동 공동위원장은 추모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19세기말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국권침탈에 맞서 교육자로서 대성학교, 오산학교에서 교육, 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 조직에 참여하시고, 언론인으로, 국민계몽가로 개화민권운동 및 국권회복운동에 헌신하시며, 1897년 독립협회 활동 중 7개월의 옥고와 1905년 을사늑약 강제체결 시 저항으로 2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셨습니다.”

이후 한일병탄으로 국권이 침탈되었지만, 그의 독립운동은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1914년 연해주에서 불라디보스톡에서 ‘한국군관학교’ 설립을 추진하다 3개월 투옥당하시고, 이상설, 이동휘 등 애국지사들과 ‘대한광복군정부’를 수립 운영하셨습니다. 1915년 신흥무관학교 2기생인 장남(의직)은 21세 때 1915년 초등학교 교사로 부인하던 중 풍토병으로 순국하는 아픔 속에서도 독립투쟁의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며, 1919년 중국 길림성에서 3.1.독립선언에 앞서 ‘대한독립선언서’을 선포에 참여하였습니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 퍼져나가는 것은 우리 민족의 독립 실현 의지가 꺼지지 않고 강하게 활활 타오르는 확인하시고,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지휘하고, 항일 투쟁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정부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고, 중국 상해에서 애국 독립지사들과 뜻을 같이 하셨습니다.”

그뒤 이동녕 선생의 독립운동 업적을 피력하며 1962년 건국서훈 2등급 추서는 예우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서문동 공동위원장은 그 업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대한민국 임시정원 초대의장 등 3번의 의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12년간 맡으셔서 실질적으로 임시정부를 유지 경영하였습니다. 특히, 임시정부 주석으로 이봉창의사 의거와 윤봉길의사 거사를 막후에서 지휘하시며 독립 투쟁을 주도하셨음에도 광복 78주년 동안 우리는 잊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다고 하면서도, 여의도 국회로텐더홀에 초대 국회의장으로 선생님의 흉상을 모셔놓고서도, 우리 역사 교과서에 이름 석 자 없음에도 우리는 방관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서문동 공동위원장은 이동녕 선생의 독립서훈 1등급 대한민국장 추서를 위한 확고한 의지를 추모사에 담았다.

“국가보훈청이 국가보훈부로 격상되는 올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끊임없이 추격하는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며, 가시밭길을 걸어가듯이, 임시정부 청사를 상해에서 치장까지 9번이나 옮겨 다니며, 우리민족의 독립투쟁을 부드러운 충청도 리더십으로 임시정부의 구심점이 되셔서 이끌어 오신 석오 이동녕주석님이 공적을 재심사하여 독립서훈 1등급 대한민국장으로 추서해야 함을 고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동녕주석의 공적을 재심사하고, 독립서훈 1등급으로 격상하여 우리 역사에 반영하여 학교 역사교과서에 편입하여 후세에 전할 수 있도록 한마음으로 함께 할 것입니다.”

천안시와 석오이동녕선생 서훈상향범시민추진위원회의 염원이 꼭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많은 힘들이 실렸으면 한다.

김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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