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교도관 생활에의 회고

대구구치소가 이미 98년 12월 31일 개청되었음에도 부임해 훑어보자니 아직껏 그 운용의 대내외적 프로토콜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고 있었다. 멋진 외관에 어울리지 않게 역할의 체계와 소통은 엉킴이 컸다. 자체방호계획은 물론, 고층시설에 특화된 화재진압 체계와 시설들이 기준 미달이어서, 시설과 장비를 보완하고 부서별 임무를 훈련. 숙달시키는데 꽤 많은 시간이 들었다.

어디 그 뿐이랴, 부임한 다음날 모 계장이 결재를 받고자 가져온 보고문서가 또한 가관이었다. 문서의 내용인즉슨, 구치소 직원들을 대상으로 재소자들이 검찰청에 제출한 진정서가 경찰로 이첩되어 그 조사차 경찰관들이 내소하였으니, 출입 및 조사업무를 허가해 달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한지라 연유를 캐물으니, 이전부터 관행처럼 행해져 왔었다고 대답하며 머리만 긁적이는지라 더는 묻지도 않고 지시했다.
「이런 관행은 잘못된 것이므로 허가할 수 없다. 검찰청에는 내가 연락할 터이니 경찰관들에게는 걱정 말고 돌아가라고 전달해라.」

그런 따위의 진정서가 아니더라도, 인신의 구속. 구금과 관련된 직무를 행하는 검찰, 경찰, 교정시설 등의 근무자들은 당해 직무와 연관되어 피소되는 경우까지 뜸하지 않게 겪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교도관들이 가장 많이 고소, 고발을 당하며 힘든 시간들을 받아 내고 있었는데, 범죄자들과 오랜 기간 삶의 터를 공유하기에 숙명처럼 비롯되는 것이라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경험들은 자칫 직원들로 하여금 의연함과 자신감을 내려놓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상습적이고 명백한 무고 행위를 색출하여 징계, 입건송치 등으로 강력 대처함은, 직원 사기의 진작을 위해 기관장이 앞장서서 조치해 나가야만 할 몫이요 숙제였다.

교도관은 특별사법경찰관으로서 교정시설 내에서 발생하는 재소자들의 모든 범죄행위를 수사. 송치 하여 사법적 처벌을 받게 하는 권한을 지닌다. 시설의 특성을 감안한 당연한 조치로서,
수용기강 확립과 교도관의 존재감 표징이 이를 통해 뒷받침된다.
그러나 교도관을 포함해 법무부 직원들의 사기와 자존감 고양의 화룡점정이라 할 만한 제도도 한때 있었으니, 그것은 90년대 중반까지 법무부 내규에 명시되었던, 법무부 직원에 대한 수사관할 규정이었다. 
그에 의하면 법무부 소속 공무원에 대한 수사 권한은 오직 검찰에만 있었던지라, 타기관이 끼어들 틈은 아예 주어지지도 않았다. 짐작컨대 검찰을 필두로 한 법무부의 위상 제고가 그 내규의 일차적 지향이었겠지만, 대 범죄 투쟁과 수용처우 업무 등으로 사투하던 조직원들의 자존감을 다독여 주는 밑밥으로서의 역할 또한 결코 작지는 않았다.

그러나 특정집단에 대한 특권적 배려라는 법률적, 사회적 질타에 맞닥뜨려, 어쩜 마음의 갑옷인양 든든했던 그 내규는 종래 폐지되고 말았었다. 지금의 신임 검사들이 그런 과거를 풍문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더라도, 본인들이 처리해야 할 본연의 업무인, 교도관에 대한 진정건의 조사를 오히려 경찰에 이첩하는 실수는 결코 행하지 않았으리라 싶어 무척 아쉬웠다.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벌금 미납으로 환형 유치되어 오는 자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대구에는 노역장이 있는 대구교도소가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는 전혀 무관한 구치소로 이들을 수용지휘하고 있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환형 유치된 자들은 매일 노역장에서 일정시간 근로에 임해야 하는 것이었다. 
연유를 들어보니, 대구교도소가 검찰청으로부터 멀리 화원 쪽에 위치한 반면에 대구구치소는 근거리인 수성구에 같이 자리하니, 검찰청 집행과에서 그네들의 이송업무 편의를 위해 그리 행한다고 했다. 형벌 집행의 본질과 취지가 훼손되고 있음이었다.

그러나 그런 기형적 수용지휘를 탓하기에 앞서, 유병자가 태반인 이 노역장 유치자들의 처우가 먼저 마음을 바쁘게 했다.
유병의심자들을 선별, 외부병원 진료 및 입원조치 등으로 대처해 나갔으나, 소요되는 의료예산도 문제거니와, 그렇잖아도 늘 빠듯한 직원들의 계호력 누수가 더욱 큰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교정위원(교정참여 미간인)들의 도움을 받아, 중환자들을 우선으로 소액 벌금미납자들의 벌금을 대납하게 하여 출소를 시키는 촌극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하다 보니, 주로 하층민의 삶을 속박하는 벌금형에도 집행유예제도가 허용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아쉬움이 절로 들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2018년에 이르러서야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는 집행을 유예할 수 있게 법이 개정되었으나 만시지탄이라 할 수 밖에.

부임 후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대구지검장을 면담하여 구치소의 현황과 당면한 문제점 및 건의사항 등의 정보보고를 할 기회를 가졌다. 검찰청에 보내진 교도관에 대한 재소자들의 진정서가 경찰로 이첩되어, 교도관들이 경찰로부터 조사를 받기에 이른 사안에 대해서는 보고하는 나보다도 더욱 얼굴을 붉혔고, 그간의 업무 파악과 집행에 대해 거듭 고개 끄덕이며 격려해 주길 마다하지 않았다.

그 후 교도관에 대한 진정서의 경찰이첩은 근절되었고, 벌금 미납으로 환형 유치된 자들은 전원 대구교도소로 집금, 수용하여 노역에 임하도록 조치되었다. 대구구치소가 비로소 본래의 역할에 걸맞게 기능하게 된 것이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왔었다.

                    이태희 (전 법무부 교정본부장/ 현 대한민국 재향 교정동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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