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과 태양

“공모전을 준비하며 감사는 제게 아픔이고, 눈물이고, 후회를 마주하는 시간이었지만, 변화의 시간이고, 희망의 시간이었습니다.(수형자 000님의 소감문 중에서)

공모작품 심사를 하면서 이솝 우화에 나오는 ‘북풍과 태양’이 생각났습니다. 수형자들이 새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태양과 같은 ‘감사’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심사하는 동안 감동받은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 중대부초 교장 이점영 심사위원이 제2회 수용자 감사나눔 공모전 감사 글을 읽고 난 뒤 남긴 소감문이다. 수용자가 감사를 쓰면서 희망을 찾았다는 말에서 왜 이점영 님은 ‘북풍과 태양’ 이야기를 떠올렸을까? 거기서 왜 감사를 태양으로 보았을까?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정리한 ‘북풍과 태양’ 이야기를 보자.

“태양과 북풍이 논쟁을 벌였습니다. 태양은 자신의 명랑하고 따뜻한 성품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북풍은 자신의 냉정하고 무서운 성격 때문에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후 이야기는 이렇다. 나그네를 두고 내기를 하는데, 먼저 북풍은 있는 힘껏 센 바람을 불게 해 외투를 날려버리려 했으나, 점점 바람의 강도를 높일수록 나그네는 더 옷을 꽁꽁 여몄다. 결국 힘을 모두 써버려 기진맥진한 북풍은 포기하고 태양에게 차례를 넘겼고, 태양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나그네에게 가까이 다가가 뜨거운 햇빛을 쨍쨍 내리쬈다. 그러니 더워진 나그네는 외투를 훌훌 벗은 후 나무 그늘에 앉았고, 결과적으로 태양이 이겼다는 결말이다.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북풍과 태양’ 우화가 다음과 같은 교훈을 주고 있다고 한다.

“누군가의 행동을 바꾸는 데 힘의 논리가 유효하냐, 설득의 논리가 유효하냐 하는 것이죠.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북풍의 강한 힘이 아니라 태양의 온화한 설득이었습니다. 힘의 논리는 단순하나 설득의 논리는 복잡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오래 걸립니다. 그러나 타의에 의한 행동 변화와 자의에 의한 행동 변화의 차이는 큽니다. 설득은 상대방을 충분히 존중하고 배려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솔직한 자세로 진실한 내용을 전달합니다. 설득을 통해 상대방 마음을 얻으면 행동은 자연스럽게 변화합니다.”

여기서 ‘타의에 의한 행동 변화와 자의에 의한 행동 변화의 차이’에 주목해 보면, 스스로 쓰고 성찰하고 미래를 다짐하는 감사쓰기만큼 자의에 의한 행동 변화가 큰 덕목은 없는 것 같다. 태양도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그 힘이 타인에게 전해져 그 타인 또한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는 감사, 그 타인의 감사가 또 다른 타인에게 감동을 주는 감사, 이처럼 감사의 선순환을 마주한 그 시간이 그래서 이점영 님은 귀하다고 했던 것 같다.

지금 자유를 얻었다

“감사나눔 공모전에 참여한 작품들을 살펴보며 ‘와~ 진짜’ 탄성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감사를 글로 남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마음 깊이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감사에 인색해져가는 저의 삶을 돌아보며 내 죄가 더 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지금 감사하는 사람이 진짜 자유로운 사람일 거라 생각해 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감사로 변화시키며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바꾸어 갈 감사나눔신문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공모작품 심사를 한 도서출판 비채나 박연숙 대표의 소감이다.

여기서 “지금 감사하는 사람이 진짜 자유로운 사람일 거라 생각해 봅니다”에 주목해보자. 수용자들은 닫힌 공간, 갇힌 삶을 살고 있는데, 어떻게 그들의 감사 글에서 자유를 읽어냈을까? 감사는 긍정이고, 긍정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마음 편한 게 자유가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든 감사를 하면 자유로운 삶이 아닐까?

<문장의 일>을 보면, “윌리엄 워즈워스의 유명한 소네트 한 구절을 보자. ‘수도자는 비좁은 수도원 방을 싫다고 하지 않고, 은둔자는 좁디좁은 독방에 불평하지 않으며, 학자는 고독에 잠긴 성채를 마다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윌리엄 워즈워스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워즈워스의 결론은 자신이 ‘소네트라는 아주 작은 땅덩어리에 갇혀 있어’ 흡족하다는 것이다. 소네트가 작은 땅덩어리라는 말은 한계가 정해져 있다는 뜻이고, 정해진 한계는 무한한 의미를 산출한다.”

소네트는 엄격한 형식이 요구는 짤막한 시인데, 이에 맞추어 쓰는 게 제약이 아니라 자유를 주어 더 좋은 문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감사라는 형식의 글이 갇힌 자들에게 자기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문장을 나오게 해주고, 이 문장이 자유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 감사 글에서 자유를 바라보지 않았을까?

감사라는 형식의 글을 쓰는 지속적인 습관, 분명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줄 것이다. 이에 미리 감사한다. 감사합니다.

김서정 기자

소중한 글입니다.
"좋아요" 이모티콘 또는 1감사 댓글 달기
칭찬.지지.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