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하여 말이 한 사람의 세계를 드러낸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때로는 어떤 분은 집에 살지 않고 감옥에 갖혀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용하는 말의 확장성에 따라 우리는 무한히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다.

특히 말 가운데 어떤 사물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세계를 판단할 수 있다. 이름을 불리우는 대상도 그 이름에 영향을 받아서 본질이 변하기도 한다. 감사에 관한 실험을 해보면 아주 명확하게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명언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김춘수의 대표작인 꽃은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것을 이해하는데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꽃의 탄상 배경은 아주 로맨틱 하다. 지방 고등학교 교사 시절 새로 부임한 아름다운 여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책상에 학생들이 매일 꽃을 꽂아 놓았다. 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여선생님은 김춘수 시인이 수업하러 간 사이에 꽃병을 슬쩍 김춘수 시인 책상 쪽으로 밀어 놓았다고 한다. 그러면 김춘수 시인은 그 여선생님이 수업하러 간 사이에 그 꽃병을 다시 그 여선생님 책상 쪽을 밀어 놓았다.

서로 꽃병을 밀어 놓는 몸짓이 계속되는 사이에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꽃이라는 시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배경이 있는 꽃을 필자가 좋아하는 것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부분이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름을 불러주니 비로소 꽃이 되었다는 신비로운 현상 때문이다.


우리 생활의 필수품이 된 핸드폰은 이름이 여럿이 있다. 한글전용을 지지하는 분들은 손전화라고 한다. 그리고 무선이라서 가지고 다니기 편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모바일폰이라고 한다. 그리고 노트북이나 데스크 탑 컴퓨터의 지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스마트폰이라고 한다.


그 이름을 무엇이라고 부르냐에 따라서 이 전화기를 사용하는 범위에 차이가 있는 것도 아주 재미있다. 핸드폰이라고 부르는 분들은 정말 이것을 손으로 들고 다니는 전화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대부분의 시니어들이 이렇게 핸드폰 또는 손전화 수준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명함에도 손전화라고 하고 전화번호를 인쇄해 놓는다.

이보다 좀 더 폭넓게 활용하는 분들이 모바일폰이라고 부르는 분들이다. 모바일폰의 기동성을 이용하여 사용 범위도 넓다. 모바일폰으로 이름 부르는 분들보다 더 폭 넓게 사용하는 분들은 스마트폰이라고 부르는 분들이다. 이분들은 생활의 필수품으로 활용하면서 스마트폰의 기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인 챗GPT까지 활용하며 업무 효율을 높이고 있다.

지난 4월 17일에 시작하여 19일까지 2박3일간 법무연수원에서 있었던 감사나눔지도사 양성 과정의 마지막날인 19일에 민간 자격증 발급을 위한 시험이 실시되었다. 시험지도 볼펜도 필요하지 않았다.

스크린에는 커다란 QR 코드 하나만 떠 있었다. 그것을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 것으로 시험이 실시되고 20분 정도 지나자 모든 응시자들은 시험을 끝냈다. 채점이라는 절차도 필요 없었다. 응시자도 본인의 결과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우리의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을 이름에 걸맞게 아주 스마트하게 사용하는 분은 스마트폰을 두 개를 갖고 개인용과 업무용을 구분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제갈정웅 편집인.
제갈정웅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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