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교도관 생활에의 회고

2004년 법무부 근무를 마치고 교도관의 본향이라 할 일선 교정시설로 회귀하자니, 부여된 직책이 수원구치소장이라 주거지인 평촌에서 가까워서 좋았다. 그동안의 법무부 근무로 하여 정부 정책의 지향점과 이에 조응할 교정행정의 안목쯤은 가슴에 챙겨 품고 부임했었다.
첫 출근을 하는데, 구치소에 이를 때까지 수원 시내 사거리마다 잔뜩 붙어있는 도로 표지판 어느 한 구석에도 수원구치소를 가리키는 표지는 도시 찾아볼 수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출근한 뒤 간부회의 석상에서 그 연유를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이 서글펐다.

그렇지 않아도 민원인들로부터 구치소의 이정표가 도로 상에 전무하여 멀리서 찾아오기에 불편했다는 불만들이 홈페이지에 적지 않게 올라오고 있다고들 대답했으나, 그 민원에 대처했던 행적과 방안들을 질문하니 모두가 꿀 먹은 무엇 마냥 묵묵부답이었다. 
내가 겪는 불편이 아니니 어물쩍 지나치고 말자는 심사였던가, 도통 귀찮은 일에는 휘말리기 싫어하는 듯한 성정이 그들 모두의 얼굴에서 읽혀지는 것만 같아 마음이 언짢았다.

이튿날 역시나 기둥만 휑하니 서 있어 초라하던 외 정문에 우선 가로로 「선진교정, 시민과 함께」 라고 간판부터 멋지게 달아 보았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교정시설이어서 그러한지 ‘시민과 함께’라는 어휘가 왠지 가슴에 와 닿았다는 주민들의 글들이 구치소 홈페이지에 꽤나 많이 올라왔다.
그리고는 수원시 관내의 월별 기관장 모임 때 시장과 마주하여, 도로 표지판의 불비에 따른 민원 발생 등의 문제점을 강력히 전파• 설유했다. 또한 관계과장으로 하여금 수원시의 담당부서와 적극 협의토록 독려하였던 바, 비로소 수원시 외곽 진입로 여러 곳에 구치소 표지판이 부착  되기에 이르렀으니, 시급한 민원사항 하나는 우선 해결된 셈이었다.

그러나 정작 고쳐야 할 중요한 것들은 우리 내부에 똬리를 틀고 있어 곤혹스러웠다. 그 형태와 격식이 시대에 뒤처지니 차마 입에 담기에 민망했고, 더 이상 방치할 경우 어느 날 갑자기 생선살처럼 까발려져 손가락질 당하는 모멸감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르리라는 불안감마저 엄습해 오는 바이고 보니, 서둘러 고쳐나가리라 마음먹었었다.
가려져 익숙했던 오랜 관행과 고착된 관념 탓에 모두가 팔짱을 끼고 바라만 보아온 이 구습의 땟자국들을, 누군가는 먼저 나서서 씻고 나서야 그나마 선진교정 따위도 거론할 수 있을 성 싶었다.

지금껏 교도관들은 구내 이발소에서 재소자들에게 이발을 맡겼고, 먼지 묻은 구두 또한 재소자에게 맡기니, 그 구두들은 파리라도 앉을라치면 미끌어질 정도로 광이 나게 닦여져 돌아 왔었다. 거기에 더해 근무복, 기동복 등 입고 벗은 제복까지도 그들에게 맡겨 세탁하고 다림질하게 했음에도, 그 모든 것들은 어느 누구의 감정에도 치이지 않은 채 평범한 일상으로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전국 모든 교정시설의 복무 행태가 이러하였으니, 이에 제동을 걸었을 경우 익숙했던 근무환경의 뒤엉킴에 대한 불만의 표출은 자명할 터이고, 나아가 중뿔나게 혼자 튀려고 한다는 비난 또한 적지 아니할 것이었다.

그러나 더한 것을 감수해야 한단들 시대를 거스르는 듯한 조직의 이 미몽과 무지를 더 이상은 두고 볼 일이 아니었다. 이윽고 손을 들고 나섰다. 
격무에 시달리는 직원들의 입장을 감안하면 이발이야 재소자들의 직업훈련 직종의 한 분야이니 그 실습훈련으로 치부할 수 있겠으되, 구두를 닦게 하는 것은 그 어떤 변명으로도 용인되지 않을 것일 터, 즉각 이를 금지시켰다. 
아울러 자신이 신었던 구두의 그 유난했던 광택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누군가의 일상을 갈취한 결과물임을 확실하게 주지시켜 주었다.

그리고는 교정위원의 기증을 받아 자동식 구두닦이 기계를 구입, 설치했다. 한 번 닦는데 500원씩 투입하게 되어있는 것을 백 원짜리 동전 하나로 작동할 수 있게끔 시스템을 고쳐 구입했었다.
그것만으로도 기계의 구두약 값은 충분히 보충 될듯 싶었다. 그럼에도 불만인 직원들을 위해서는 구두닦이 통과 구두약, 구두솔 등을 비치하여 직접 구두를 닦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또한 제복의 반입, 세탁도 엄금토록 하였다. 대신에 외부 세탁소와 계약을 맺어 염가에 직원들의 제복을 세탁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었다. 
재소자가 직원 제복을 몰래 훔쳐 입고 정문을 통과하여 도주한 사고의 전례가 이미 있었고 보면, 직원들의 제복을 재소자의 손에 맡기는 행태는 벌써 없어졌어야 할 적폐이거늘, 진작에 그 구태를 끊지 못한 궁상스러움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낯선 근무 환경에 직원들의 불만과 원성이 잠시 있었으나, 생각 외로 길지 않은 시간에 그들 또한 변화의 맥락을 바라볼 줄 아는 눈을 뜨는 듯해 마음이 기뻤다. 
세상의 모든 일에 필연코 수반되는 그림자가 교정시설이라고 없지 않을 터, 누군가는 그것들을 살뜰히 챙기고 다듬어 가야하는 것이라면, 그 선봉에는 여지없이 기관장이 설 수밖에 없을 듯 싶었다.
작시성반(作始成半)이라 했던가, 이후 머지않아 전국의 모든 교정시설들이 마치 도화선에 불이 붙듯 수원구치소의 선도적 조치를 뒤따랐으니, 시대의 흐름에 맞게 성취를 설정해 두고 흘린
땀의 기꺼움이 그만하면 자족할 만 했었다.
                 이태희 (전 법무부 교정본부장/ 현 대한민국 재향 교정동우회 회장)

소중한 글입니다.
"좋아요" 이모티콘 또는 1감사 댓글 달기
칭찬.지지.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