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언의 마음산책

아침 일곱 시를 조금 넘긴 시간, 오늘도 어김없이 알람처럼 전화벨이 울린다. 
/친구, 오늘 아침 컨디션은 어떠신가?/ /덕분에, 나쁘지 않네. /자다가 다리에 쥐는 안 났고?/ 응, 쥐덫을 놓고 자서 그랬는지 탈 없이 잘 잤어./ 쥐덫?/ 철물점에서 쥐덫을 안 팔아서 쥐덫 그림을 머리맡에 붙여놓고 잤지. /헐!/ /자네는 어때?/ /나야 뭐, 잘 자고 잘 일어났지. 지금 어딘가?/ /사무실 도착해서 모닝커피 한잔하고 있네./ /벌써? 와따 보지란하네잉. 바쁜 일 없으면 잠 좀 푹 자고 느지막이 나오지./ /그러게. 새벽 다섯 시쯤 눈이 떠지고 나면 잠이 다 달아나버리네./ /친구는 아무래도 전생에 부지런한 농부였던 모양이네./ /그런가? 새벽 예불 드리는 스님 아니고?/ /스님? 아미타불! 난 이제 차 시동 걸었네.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 되시고, 오후에 또 통화하세./ /그려, 운전 조심하고 수고하시게./ /응, 수고!/

매일 아침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반복되는 친구와의 통화다. 황망하게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뭘 해도 마음이 헛헛하던 시절, 봄처럼 바람처럼 햇살처럼 그 친구가 내게로 성큼 다가왔다. 그는 언제 어디서 만나도 반가워할 고향 친구였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아침마다 문안 인사를 주고받을 만큼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렇게 예고 없이 내 삶에 훅 치고 들어온 친구는 그날부터 매일 아침 문안 인사를 해오고 있다. 벌써 3년째다. 

건축자재 유통회사에서 영업을 총괄하는 친구는 매일 거래처와 현장으로 외근을 나간다. 가끔은 지방 출장도 가지만 주로 수도권을 돌면서 틈날 때마다 내게 전화를 걸어온다. 
모닝콜은 물론이고 점심시간에도 전화벨이 물린다. 딱히 특별한 용건은 없다. 그저 지금 뭘 하는지, 점심은 먹었는지를 묻는 게 전부인 경우가 많다. 가끔 새로운 고향 소식이나 친구들의 경조사를 전할 때는 통화가 길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저녁 8시쯤 다시 전화를 걸어와서 저녁은 먹었는지 산책은 마쳤는지를 묻고 잘 쉬라는 인사로 끝을 맺는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6일간은 하루에 세 번 이상 줄기차게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가끔은 헷갈릴 때도 있다. 가족도 아니고 피를 나눈 형제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자주 전화통화를 하고 매번 안부를 물을 수 있을까? 모르긴 해도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아니라면 찾아보기 힘든 일일 것이다. 더구나 50대 중년 남자들의 이야기라면 누가 믿겠는가.

퇴근 후 매일 저녁 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며 아내가 한마디를 던진다. /두 분이 사귀시나 봐?/ /그러게. 중년의 브로맨스가 날로 뜨거워지네./ /그래도 당신에게 그런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고 부럽기도 하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 친구와 이렇게 지내게 될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암튼 그 친구에게 고맙기도 하고…, 여러모로 감사할 일이지./

아무래도 그 친구와 나는 전생에 뭔가 큰 공덕을 쌓은 모양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하루에 세 번 이상 통화하는 것도 모자라서 친구는 일주일에 한 번은 점심을 같이하자며 사무실로 찾아온다. 그리고 주말이 다가오면 서울 근교로 나가 바람도 쐬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오자며 부부동반 당일치기 여행을 제안하곤 한다. 덕분에 지난가을엔 난생처음 단풍 구경도 하고, 얼마 전에는 담양까지 내려가서 경비행기도 타보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아침이 기다려진다. 이제는 시곗바늘이 아침 일곱 시를 넘어갈 때면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힐끔거리게 된다. 그래, 오늘은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보기로 한다. /난데, 저녁에 약속 없으면 팥 칼국수나 같이 먹을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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