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언의 마음산책

아침이 빨라졌다. 새벽 5시 30분이면 창문이 환하게 밝아온다. 아침 햇살을 알람 삼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샤워를 마치고 아내가 준비해준 해독 주스 한 잔을 들이켠 후, 삶은 달걀 하나와 오븐에 갓 구워낸 호박 고구마로 아침을 때우고 골목을 나선다. 
하루가 다르게 짙어가는 신록만큼 아침 공기가 싱그럽다. 며칠 전부터 라일락 향이 옅어지더니 오늘은 달콤한 아카시아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큰 도로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이팝나무에는 여린 초록의 이파리 위에 하얀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교차로 옆 화단에는 활짝 핀 검붉은 모란꽃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5월이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도 좋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연을 즐기며 놀기에도 마냥 좋은 계절이다. 발길 닿는 곳마다 온갖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고, 눈길 가는 곳마다 신록이 물결이 넘실거린다. 
새소리 바람 소리에 귀가 즐겁고 풍성한 제철 과일과 각종 봄나물로 입안에 군침이 도는 계절이다. 덩달아 몸도 마음도 푸르러 지고, 이 계절이 존재하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와 사랑이 절로 싹트는 계절이다.

5월은 그리움의 계절이기도 하다.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이제는 장성해버린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성인이 되기 무섭게 부모 품을 떠나버린 자식들은 언제 다시 둥지를 찾아 돌아올지 기약이 없다. 
지금 이 순간 아이들도 잠시나마 부모 생각을 떠올릴까? 아마도 그건 부모들의 희망 사항에 불과할 것이다. 그 시절의 나 자신을 돌아보면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라는 속담까지 생겼을까. 
그래도 괜찮다. 멀리 타국에 나가 있어서 자주 볼 수는 없지만, 가끔 건강하고 씩씩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이렇게 부모가 되어가나 보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그리움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오래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이제는 기억마저 흐릿해지는 것 같아 책상 서랍에 넣어둔 사진을 슬며시 꺼내보곤 한다. 
퇴근길 지하상가 꽃집에 진열된 카네이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리움은 이내 회한으로 바뀐다. 아, 나는 그분들의 가슴에 저 카네이션을 몇 번이나 달아드렸을까? 아니 당신들의 아들이어서 감사하다고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말한 적이 있었던가? 

그나마 어머니께는 몇 번 그런 비슷한 표현을 한 적이 있지만, 아버지께는 감사의 인사는커녕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드린 기억이 없는 것 같고, 객지 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는 아버지의 두 손을 꼭 잡아드리고 싶다.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꿈속에서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다행인 건 내 곁엔 아직 ‘친절한 영애 씨’가 있다. 올해 구순을 맞이하는 영애 씨는 아내의 어머니이자 나의 장모님이다. 그녀는 존재만으로도 내게 마음의 위안이 되고 더 진한 설렘으로 5월을 맞이하게 한다. 생일을 음력으로 쇠는 까닭에 이번 영애 씨의 구순은 5월에 치르게 된다. 며칠 후면 영애 씨가 상경한다. 
혹시라도 자식들이 힘들까 봐 구순의 노구를 이끌고 천릿길을 달려 상경하는 친절한 영애 씨. 그녀와의 상봉이 기다려진다. 
햇살 좋고 바람도 순한 5월의 어느 날, 영애 씨를 만날 생각에 벌써 마음이 환해지고 따듯한 감사의 기운이 차오른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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