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환의 감사스토리텔링

심벌즈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광화문 글판에 올랐던 시인데, 마지막 구절이 결정적 반전을 선물하지요.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극작가 이강백이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심벌즈라는 악기를 통해 인생을 은유하는 작품을 써 보라. 배우는 2명만 등장시킬 것.” 다음은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든 연극 <챙!>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심벌즈 연주자처럼, 박자를 세면서 기다리다가 절정의 순간에 ‘챙!’ 하고 울릴 그날이 누구에게나 온다.” 

딱 한 번이지만 오케스트라 맨 뒷줄에서 심벌즈가 울려야 드보르작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는 절정을 향해 달리지요. 중요한 건 속도와 빈도가 아니라 심도와 밀도입니다. 
‘긴 침묵 속 큰 울림’의 화두를 안고 또 하루를 시작합니다.


라틴어 수업

독서모임 회원들과 함께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을 읽고 ‘내 가슴에 꽂힌 라틴어와 책 속의 한 구절’을 선정해 발표했습니다. 
다음은 최윤영 회원이 선정한 라틴어와 책 속의 한 구절입니다. <딜리제 에트 팍 쿼드 비스(Dilige et fac quod vis)-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신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제게 남은 시간은 얼마만큼이냐고요. 하지만 신은 침묵으로 답하겠죠. 누구도 자기 생의 남은 시간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그렇게 또박또박 살아갈 밖에요.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답할 수 있어야 하겠죠? “사랑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습니다.” 


평정심

소설 <하얼빈>의 작가는 거사를 앞둔 전날 밤 권총을 점검하던 안중근의 마음 상태를 ‘흔들림’과 ‘머뭇거림’이란 단어로 진단했지요.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는 방아쇠를 거머쥐고 머뭇거렸다.” 

고뇌하던 안중근이 마침내 결심한 것은 ‘평정심’이었습니다. “고요한 평정을 유지하고 조준선을 찾아가야 한다. 평온해진 내 몸을 총알에 실어서 이토의 몸속으로 박아 넣자.” 
대학(大學)에도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고요한 뒤에야 안정이 되며(靜而後能安), 안정된 뒤에야 생각할 수 있고(安而後能慮), 생각한 뒤에야 얻을 수 있다(慮而後能得).” 

고요한 수면이 달빛을 품을 수 있듯이 천지를 개벽하려는 자 먼저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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