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언의 마음산책

한 달 전, 대안학교 교감으로 있는 친구로부터 특별한 제안을 받았다. 고등학교 3학년 문예반 학생들에게 ‘1일 멘토’가 되어달라는 부탁이었다. 세대 차이가 너무 나서 잠시 망설였지만, 40여 년 전 문예반 활동에 빠져 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흔쾌히 허락했다. 
다행히 장소는 내가 편한 곳으로 정하라고 해서 사무실 근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3주 후 금요일 오후 3시, 약속장소인 합정역 7번 출구 앞 빵집 2층 카페로 향했다. 거리엔 때마침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고 있었고, 투둑투둑 빗방울 듣는 소리와 함께 약간의 긴장감과 설렘이 느껴졌다. 카페에는 벌써 다섯 명의 학생들과 지도교사가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초면이라서 자기소개부터 했다. 
학생들부터 차례로 자기소개를 하고 마지막으로 내 소개를 했다. 대안학교라서 그런지 같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지만 학생들의 나이는 열일곱부터 스무 살까지 다양했다. 

멘토링 수업은 학생들이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을 하면 내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주로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독서와 출판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고, 그와 동시에 학생들과 지도교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냈다. 이 자리를 만든 장본인이자 대안학교 교감인 친구였다. 

“미안! 내가 많이 늦었지? 도로가 막혀서 예정보다 늦어졌네. 수업 계속 진행해요.” 수업이 다시 진행되었고, 한 시간쯤 지나자 학생들의 질문이 끊겼다. 
“그럼 이번에는 여러분이 각자 품고 있는 꿈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실래요?” 
그러자 한 학생이 먼저 손을 들었다. 
“저는 작은 책방을 열어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글도 써서 출판까지 해보고 싶어요.” 
“멋지네요.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책방을 열고 싶은데요?” 
“거기까진 아직 생각하지 못했어요.” 
“음, 그럼 약국 같은 책방은 어떨까요? 외로울 땐 읽는 책, 친구와 오해가 생겼을 때 해결방법을 제시해 주는 책 등을 소개해 주는, 그런 맞춤형 책방은 어때요?” 
“좋은데요. 그러려면 책을 엄청 많이 읽어야겠네요.” 
“당연하죠. 약사가 자신도 모르는 약을 팔면 안 되잖아요.” 

그때 교감인 친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도 요즘은 책이 넘쳐나고 책에 대한 정보도 인터넷이나 유튜브 등으로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시대잖아. 나 때는 책 한 권 사 보려면 읍내까지 나가야 했고, 책 살 돈도 없던 시대였지. … 88올림픽을 치르면서 우리나라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인터넷이 생기면서…….” 
그렇게 시작된 친구의 이야기는 일본을 거쳐 중국까지 이어졌고 10분이 지나도록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는 왜 이 이야기가 시작됐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학생들도 하나 둘 고개를 숙이고 딴 짓을 하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제지하고 나섰다. “저기요, 교감 선생님? 학생들이 라떼를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은데요. 이러다가 세계 일주하겠어요.” 다행히 한바탕 웃음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대화는 서로를 존중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행위이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대화를 주도하는 것은 강의나 훈화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나이를 먹을수록 대화 상대가 없어진다고 하소연하는 친구들을 종종 보게 된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대부분 일방통행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체력이 달리거나 재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말만 많아져서 친구들이 떠나가는 것이다. 
친구는 가족 다음으로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존재다. 그들에게 매번 지갑을 여는 친구는 못되더라도 입 대신 두 귀를 활짝 열어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런 친구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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