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교도관 생활에의 회고

대구지방청장으로 발령받은 후 유관기관들을 돌며 인사하고, 각 부처 대구지역청장들 모임의 애칭인 대총회(대구 총각들의 모임) 가입으로 일종의 전입 절차를 모두 치르니, 다시 객지의 외로움을 이겨가야 하는, 혼자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객지에서의 홀아비 생활이란 거듭할수록 익숙해지기는커녕 짜증의 무게만 날로 가중시켜 주는 것이었던지라, 한 때는 입술 깨물고 감내해 보기도 했었던 자급자족의 소꿉놀이 따윌랑은 집어 던진 지 이미 오래였다. 적지 않은 공식. 비공식 모임과 회식 등으로 홀로 있는 저녁이 그리 많지는 않았으나, 그러나 단 한 끼의 식탐을 위해서도 주방을 서성이는 처연함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았었다.

그러다가 문득 무릎치고 찾아낸 일상의 전투식량이 있었으니, 바로 한 줄의 김밥이었다. 퇴근 후 동네 인근을 산책하는 솔솔한 재미와 더불어, 돌아오는 길에 눈에 띄는 김밥 집에 들려 김밥 한 줄 사서 오면 그 양이 먹기에 적당하여 참 좋았고, 설거지 따위가 필요 없으니 그 또한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두터운 방한복의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음에도, 관사 인근 김밥 가게에 거듭 두 번을 들렀더니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말에 나를 알아보는 걸로 지레짐작하여 화들짝 놀랐던 경험 탓에, 그 뒤로는 가급적 관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가게들만 찾았었다.
행여라도 내 행색이 구차하고 좀스럽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지도 모르리라는 기우 때문이었다.

어느 주말에는 오후 늦게 관사 건너편에 위치한 두류공원을 산책 삼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런데 연세 높은 어르신들이 겨울 초저녁의 을씨년스러움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곳저곳 무리지어 움츠린 채 정담을 나누는가 하면, 버무려져 오는 어둠을 털고 막 일어서 흩어지는 모습들이 하나같이 빛바랜 풍경처럼 다가들어 씁쓸했다. 
그래서인가 뉘엿뉘엿 해질 무렵의 황혼이 축축하여 각별했고, 마음에 문득 바람이 일렁였다. 모여서 나누는 추억의 힘으로도 추위와 적막함은 버티어낼 수 있는 것인가, 그나마 숙성된 늘그막의 여유들이 엿보여 생각의 무거움이 덜어지는 듯했다.

등을 돌려 걷자 하니 객지에서 느끼는 쓸쓸함, 그 허허로움의 한기가 불쑥 몸을 후벼왔다. 「외로움을 구가할 자신만 있다면 터울을 둔 객지의 삶도 호젓함 있어 나쁘지 않다고, 스믈 스믈 다가드는 고독의 그림자 또한 내치지 않고 보듬노라면 막걸리 한 잔의 취기만으로도 낭만은 걸러지는 것이라고」 썰을 풀었던, 지난날의 내 문장이 머릿속을 아른거려 왔다. 
글과 삶은 닮아 있다고, 진실한 글은 한 사람의 영혼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누군가 말했거늘, 아니나 다를까 그 영혼의 허기로 갑자기 목구멍이 칼칼해져 왔다. 다급함에 걸음을 재촉하여 공원의 뒷길을 돌아 나오니, 마치 흑백영화처럼 고풍스럽게 자리 잡은 주막 하나가 재빠르게 내 눈길을 끌어왔다.

쭈그러진 십여 개의 주전자로 간판을 대신하고 있는, 언뜻 보아서는 건방지고, 그러나 또한 남루하기 짝이 없는 그 주막집을 애초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아니었다. 
커다란 놋그릇에 넘칠 듯 가득 담은 막걸리 한잔과 조기 사촌쯤은 될 듯한 작은 생선 두 마리, 그리고 번데기 한 접시와 깍두기 김치까지 더한 술 한 상에 단돈 천원이어서, 먹는 사람 미안하게 만들었다. 
주인 할머니의 후덕한 얼굴을 닮은 듯한 이 풍요한(?) 천원의 술상은, 아마도 손님의 대종을 이루는 노인네들의 가벼운 호주머니를 배려한 듯싶었다. 
거기에다 외양과는 달리 실내장식이며 가구들이 오랜 세월이 녹아든 것들임에도 하나같이 정갈하여 보기 좋았다. 여기 저기 자리 잡고 술잔을 나누는 노인들의 모습도 연륜의 여유로움이 녹차향처럼 배어있는 듯해 보기 좋았고, 어쩌다 보여 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청춘사업은 덤으로 얻어지는 안주여서 취기를 더해 주었다.

나처럼 혼자인 술꾼들도 더러 있었는데, 술의 힘을 빌리니 손쉽게 말 친구가 되곤 했다. 저잣거리 어드메 머문들 그게 무슨 대수랴! 세상 돌아가는 얘기로 솔직한 속내를 나누는 한 잔의 술, 그 술의 언어가 정직하니, 서로를 모르면서도 마음이 데워졌다. 
깃을 한껏 올린 방한복과 눌러 쓴 모자 따위로 스스로를 감추었음이 민망할 뿐.
익숙하고 단조로운 일상의 껍질을 깨고 경험한 그 주막의 정경은, 내게는 정녕 놀라웁고 신비롭기 까지 했었다.
어느 날은 칠십대 중반의 노인분과 마주하게 되었는데, 그가 거치고 이겨내 온 굴곡진 삶을 말하다가, 자신의 인생 중 십 수 년은 감옥생활이었다고 토로하는 탓에 깜짝 놀랐었다. 다행히도 그는 교도소에서 기술을 익히고 자격증들을 취득한 덕분에 중년 이후로는 작은 공장까지 운영, 자식들 교육과 결혼도 시켜내었으니 이만하면 내 인생 책임진 거 아니냐며 호탕하게 술을 들이켰다. 

「함께 흔들리며 핀 꽃들로 거친 들판이 아름답듯이」 , 외롭고 거친, 같은 바닥을 갇히고 또 지키며 서로 모른 채 살았어도, 시련을 극복하고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설줄 안 그를 해후함은 또 다른 기쁨이어서, 그와 나누는 술에서 동지적 유대감마저 느꼈었다. 그러나 그 술은, 그에게는 차마 말 못한 나만의 술이었었다.
우연히 발 디뎌 포로 된 그 주막의 향기에 허기져, 주말이면 언제나 산책을 핑계 삼아 두류공원의 황혼을 배회하곤 했었다. 땅거미 내리는 겨울 초저녁, 이윽고 잿빛 어둠을 밝히는 그 주막의 불빛을 마주하노라면 마냥 가슴이 뭉클했었다. 돌아보면 한 바탕 꿈인 양 그려지는 그 겨울의 주막은, 따뜻하였어 그립다.
         

        이태희 (전 법무부 교정본부장/ 현 사단법인 대한민국 재향 교정동우회 회장)

소중한 글입니다.
"좋아요" 이모티콘 또는 1감사 댓글 달기
칭찬.지지.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