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언의 마음산책

5월의 마지막 날 아침, 다른 날보다 30분 일찍 집을 나섰다.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이 6시 30분,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직접 내린 커피 한 잔을 들이켜며 창밖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휴대전화도 요란하게 울어댔다. ‘뭐지? 어디서 지진이라도 난 건가?’ 휴대전화를 열자 서울시에서 보낸 위급 재난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서울 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창밖에선 ‘실제 상황’이라는 안내방송까지 흘러나왔다. 순간 가족들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일단 무슨 일이 발생한 건지 정확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뉴스를 검색했다. 톱뉴스로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탑재한 것으로 보이는 우주 발사체를 남쪽으로 발사했다는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미사일 발사 같은 북한의 도발이 아니어서 가슴을 쓸어내렸고, 지진 같은 대형 재난 상황도 아니어서 마음이 놓였다. 
기사를 보는 동안에도 휴대전화는 ‘카톡카톡’ 쉬지 않고 울어댔다. 새벽부터 울려 퍼진 사이렌과 경계경보를 발령하는 스피커 소리에 놀란 지인들이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놀라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를 묻는 친구도 있었고, 지금 당장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라면이라도 사놔야 하지 않겠냐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아들이 아직 군 복무 중인 친구의 걱정이 가장 컸다. 이러다가 정말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것 아니냐며 태산 같은 걱정을 했다.

그렇게 20여 분이 흘러가고, 7시를 갓 넘긴 시간에 다시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어대고 두 번째 스피커 방송이 울려 퍼졌다. 하울링 현상 때문에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경계경보를 해제한다는 말은 또렷하게 귀에 박혔다. 
뒤늦게 확인한 두 개의 문자는 서울시와 행정안전부에서 발송한 것이었는데, 행정안전부에서 보낸 문자에는 ‘오발령’이라고 적혀 있었다. 새벽부터 천만 시민의 잠을 깨우고 평온한 일상을 뒤흔들어놓은 사건이 ‘오발령’이었다니,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쨌거나 경계경보 발령은 이렇게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끝이 났지만 놀란 가슴을 온전히 진정시키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탁 트인 전경을 보고 나면 마음이 좀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 앞쪽에는 4차선 교차로가 펼쳐지고 뒤쪽에는 한강을 품은 여의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은 날엔 남산타워도 선명하게 보이는 곳이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합정동 풍경은 여느 때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해 보였다. 교차로엔 질주하는 차들과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로 가득했고, 지하철로 이어진 보도에는 출근하느라 종종걸음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물결처럼 흐르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평온한 일상, 어제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새벽 공기를 뒤흔든 사이렌 소리로 인해 하마터면 이 모든 것을 빼앗길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했다. 

살다 보면 잃어버린 후에야 그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대부분 흔하고 익숙한 것들,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다. 
반복되는 일상이 그렇고, 풍경처럼 늘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가족과 친구도 그런 존재이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든다. 
소중하고 감사한 것들에 무뎌진 일상에 오늘처럼 한 번쯤 경계경보를 발령해 보는 건 어떨까.
                                                                                           <작가>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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