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삼풍백화점 참사로 세 딸을 잃은 정광진 변호사가 지난 5월19일 향년 85세로 눈을 감았다.

윤민(29세), 유정(28세), 윤경(25세) 세 자매는 한 날 한 시에 하늘로 갔다. 둘째 딸 유정 씨의 한 살배기 아들은 정 변호사가 키웠다. 참사 당시의 엄마만큼 나이를 먹은 외손자가 이번에 상주 노릇을 했다.

정 변호사는 1963년 제1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로 재직하다 큰딸 윤민 씨의 시각 장애 치료비 부담을 위해 1978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윤민 씨는 12살 때 시력을 모두 잃지만, 용기는 잃지 않았다.

1988년 미국 버클리대 특수교육과로 유학을 떠나 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윤민 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모교인 서울맹학교 교사가 되었다.

교사로 임용된 지 9개월 만인 1995년 6월 29일, 윤민 씨의 동생들은 “슈퍼에 가서 필요한 것도 사고, 언니 운동도 시키자”며 생필품을 사러 삼풍백화점에 함께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우리 내외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 세상이 끝나줬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정 변호사는 윤민 씨를 기리는 추모집 ‘나의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예수님’에서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자신이 받은 보상금에 사재 7억 원을 더해 13억 원으로 세 딸을 기리는 ‘삼윤(三允)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큰딸의 모교이자 첫 직장인 서울맹학교에 기증했다.

정 변호사는 드러내지 않고 이웃에게 베푸는 삶을 살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봉사도 못 하고, 자기 뜻을 펴지도 못하고 간 게 부모로서 안타깝다면 안타까운 거죠.”

“맹인들에게 빛이 되고자 했던 윤민이의 못다 이룬 꿈을 우리 부부가 대신하기 위한 것”이라고 부인 이정희 여사는 장학재단 설립 취지를 밝혔다. 

남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자기 행복만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보다 행복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타인에게 선행을 베풀면 긍정적인 효과가 도미노처럼 일어난다. 좋은 행동을 하면 그 행동의 수혜자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게 된다.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타인의 선행을 목격하는 사람도 감정적인 이득을 본다고 하는데 이를 감정의 ’고양(elevation)'이라고 부른다.

명예롭고 영웅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을 보거나, 감사를 하거나, 남을 돕는 행위를 보면 이런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젊은이들 세계에서 유행했던 '폼생폼사'란 말이 있다. "폼으로 살고 폼으로 죽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당당한 아름다움이 아닌, 겉멋에 치우친 채 포장만을 중시하며 허우적대는 모습들을 투영한다.

진정 우리가 숨 가쁘게 살아가는 이 무대에서 꿈꾸어야 할 모습은 폼생폼사가 아닌 "보생보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보람에 살고 보람에 죽는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왜 사는가?" "왜 그 길을 가려 하는가?" "왜 공부하는가?" "왜 돈을 버는가?" 등의 질문과 그에 따른 분명한 대답 꺼리가 있어야 한다. 

개인의 성공만을 목표로 삼는 인생관보다는 작지만 내 이웃을 위해 보람된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