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교도관 생활에의 회고

그 어떤 극단적인 비판이 있다 한들 범죄 문제의 해결을 위한 형사사법체계에서 교정의 기능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아니 될 영역이라는 당위적 의무감을 안고 "희망등대 운동"을 준비했었다. 
각국의 선진적 사례들을 참고함은 물론, 국내에서 실천 가능한 모든 정책들을 펼쳐 검토하고, 정책의 홍보 및 집행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유관기관 및 사회 저명인사들을 집행위원으로 영입, 분야별 추진위원회 구성을 완료하여 힘들게 희망등대 창립총회를 개최했을 때는, 무릇 4개월이란 날짜가 훌쩍 흘러가버린 뒤였다.

서울지방청의 청사 소재지가 안양이었던 터라 경기일보사장, 안양시장, 지역 국회의원 등을 비롯 20여명의 사회단체 대표들을 위원으로 참여시켰고, 서울청 산하 각급 교정기관장들 또한 당연직 위원으로 자리하여 창립총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니, 그간 어깨를 짓눌러오던 과중한 숙제의 무게가 눈 녹듯 덜어지는 듯해 마음이 가볍고 또 기꺼웠다. 
"꿈을 꾸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기 마련이다." 라는 말이 문득 떠오르며 내 등을 토닥이는 듯했다.

희망등대 운동에 대한 홍보는 경기일보에서 과분할 정도로 배려해 주었다. 그에 발맞추어 취업분과 위원회에서는 홍콩의 고용기회제공(One Company One job) 캠페인을 벤치마킹하여, 관련기업별 고용창출 여건 파악 및 고용의지의 독려. 확산 방향과 더불어, 교정시설별 출소자들의 기술, 기능 자격 유무 및 종류별 현황을 조사, 구축함으로써 이른바 맞춤형 취업시스템을 운영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한 재소자 심성 순화를 임무로 하는 종교 교화 위원회에서는 회복적 정의 (Restorative Justice)에 기반한 화해 프로그램들을 논의, 그 시행에 박차를 가했다. 
회복적 정의란 범죄 가해자의 책임 인식을 제고시키어, 사죄와 배상을 통해 피해자가 당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회복하고, 갈등의 당사자가 서로 화해함으로써 가해자의 공동체 복귀를 촉구하자는데 그 뜻을 두고 있었다. 

그 구체적 실현방법으로서는 사과편지 쓰기, 피해자에 대한 작업상여금의 교부 등을 들 수 있겠다. 물론 사과편지는 피해자의 감정을 고려, 사전 수취의사를 득한 경우에 한해 편지 발송을 허가토록 해야 할 것이며, 작업상여금의 교부 또한 피해자의 수령 허부를 사전 파악한 후 시행하고, 수령 거부 시는 재소자의 자율적 의사로 범죄피해자 보호센터에 기부금으로 보낼 수 있도록 허가하자는 것이었다. 

작업상여금의 피해자에 대한 송부 또는 범죄피해자 보호센터 기부의 경우, 이를 가석방의 전제조건인 "개전의 정"을 참고하는 조항 중의 하나로 부가하는 법규의 개정도 건의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한 법규 개정이 자칫 자발성을 전제로 하는 기부행위가 재소자라는 특정 신분에 따른 반강제성을 띈 기부행위의 유도로 비쳐지거나, 가석방 등 처우상의 특권을 기대하며 참여한다는 부정적 시선과 우려 또한 없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비록 간접적인 피해보상일지라도 속죄의 땀으로 얻은 상여금을 기부함은 작지만 무엇인가 사회에 기여한다는 긍정적 자기관념을 고양시켜, 사회복귀와 재범방지에 도움이 됨은 자명한 것인 바,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닐 듯싶었다.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의 참회를 가득 담은 고개 숙임만이, 의심이 가득한 이 시대에 서로를 구원해 줄 실낱같은 희망임을 가르치는 작업이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취업분과위원회에서는 출소자 취업박람회를 열어, 개별 기업들을 일일이 찾아 소요자원과 대상자를 짝 짓는 번거로움을 덜자고 건의해 왔고, 또한 수용•처우분과위원회에서는 중간처우 제도를 건의하기도 했는데, 중간처우제도란 교정시설과 사회의 사이, 즉 구금과 자유의 중간단계라는 장소적 개념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지역사회에 소규모 시설을 마련, 일정한 제한을 두고 사회 적응훈련을 시켜나가는 것을 의미했다.

할 일은 많은데 손과 능력이 부족하니, 이웃 홍콩과 싱가포르의 행형이 부럽기만 했다. 
홍콩에서는 18개 모든 자치구에서 교정국과 힘을 합쳐 출소자의 사회복귀를 위한 고용기회제공 캠페인을 펼치고, 이런 행사를 통해 사회복지와 후원 경험을 홍보, 공유함으로써 많은 기업체들의 참가를 이끄는 등 출소자의 재사회화를 위해 정부와 사회가 함께 발 벗고 나서고 있었다. 

한편 싱가포르에서는 "노란 손수건" 이라는 소설 및 팝송에서 착안하여 2004년부터 대통령의 주관 하에 "옐로 리본 프로젝트"를 범국민운동으로 확산, 추진하여 노란 리본을 부착한 반성의 편지 보내기, 자선 콘서트, 직업박람회, 걷기 대회 등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 교정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또한 지금은 비록 서울청 단위의 희망등대를 부둥켜안고 땀 흘리지만, 이 작은 시작의 걸음마가 종래는 큰 울림으로 세상에 퍼질 수 있기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장차는 법무부에서 이 운동을 주관해 나가리라 기대하며 땀을 훔치고 있자는데, 2008년 6월 초순경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년 7월 1일 부로 교정본부장으로 임명될 것인 즉, 7월 초순 시행될 간부 인사안을 검토해 올리라는 지시였다. 더 큰 벼슬이 주어졌으니 이 일들은 거기 가서 더 크게 벌려보리라 마음먹을 수밖에.
그러나 그 마음은 꼭 실천하고 말, 스스로에게 준 약속이었다.

이태희 (전 법무부 교정본부장/ 현 사단법인 대한민국 재향 교정동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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