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요셉나눔재단 요셉의원 고영초 원장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고영초 원장.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고영초 원장.

필자는 어린 시절 꿈이 가톨릭 사제가 되는 것이었는데, 5년간 사제 예비학교를 다니다가 고3때 진로가 바뀌어 의사가 되었다. 의대 학창 시절 시작한 의료봉사는 어느덧 50년이 되어, 금년 2월 38년간의 대학병원 교수직을 퇴임하면서 무료 자선병원인 요셉의원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요셉의원은 고 선우경식 원장님의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환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본다’는 이념 아래 1987년 신림동에서 시작되어, 1997년 현재의 영등포역 근처로 이사와 36년째 무료 진료를 지속하고 있는 병원으로, 치과의사, 한의사를 포함한 봉사 의사가 130명에 이른다. 필자는 요셉의원이 신림동에서 시작될 때부터 신경외과 진료를 월 1~2회 담당했었다. 이제까지의 나의 봉사의 삶을 이끌어 주신 그분께 감사드리며, 의사로서 이런 감사의 삶을 더욱 기쁘게 살도록 이끌어 준 어느 환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신경외과 조교수 시절에, 친구 신부로부터 조카가 3층에서 떨어져 목을 다쳐 사지가 마비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즉시 응급실로 데려오라고 했다. 환자는 28세 미혼녀로 파리 유학을 앞두고 있던 미술학도였는데, 아파트 3층에서 유리창을 닦다가 길거리에서 들려온 왁자지껄하는 시끄러운 소리에 한눈 팔다 아래로 추락하여 사지마비가 되었다. 

의식은 명료했고 자가 호흡도 가능했으나 팔꿈치 이하의 운동마비와 감각 소실이 확인되었고, 위팔을 조금 움찔하는 정도의 ‘목 이하 사지마비’ 환자였다. 단순 방사선검사와 CT 촬영 결과 경추 제5~6번 골절을 동반한 탈구로 경수 손상을 입은 예였다. 즉시 응급수술에 들어갔는데, 영상 소견에서 6번 경추체 골편이 떨어져 뒤쪽 척수를 압박하는 소견이 있어 전방 접근법으로 골편 제거술과 금속 플레이트 고정술로 탈구된 경추 뼈를 고정하였다. 수술 후 환자는 아무런 합병증 없이 순조롭게 회복되었다.

수술 닷새째 아침 회진 시간에 환자는 함박웃음과 함께 ‘오른손을 이마에 갖다 대는 동작’을 어설프게 보여주면서 몹시 고마워했다. 나흘째까지도 감각기능은 돌아왔지만 운동능력이 회복되는 기미는 없었는데, 환자가 성호 긋는 동작을 시작하는데 성공한 것이었다(성호 동작은 가톨릭 신자의 표시라 할 수 있는 십자가를 이마부터 시작해 가슴으로, 그리고 좌우 어깨를 따라 십자 형태로 긋는 동작). 잘 회복된다 하더라도 평생을 하지마비에 배뇨-배변 처리도 못 하고 혼자 일어나 앉을 수도 없는 상태에서 조금 회복되었다고 이렇게 기뻐하던 환자의 함박 웃는 얼굴은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후 환자는 적극적인 재활치료를 통해 손가락에 연필을 어색하게 끼고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써 내려갈 수 있게까지 되었다. 다만 몸통 이하 근력이 완전 마비 상태로 바퀴의자에 몸을 묶어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상태로 퇴원하였다.

아주 절망적인 상태에서도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환자의 감동적인 태도를 통해  감사해야 할 것들이 훨씬 많았던 내 삶을 되돌아보며, 내가 받은 재능과 지식 등을 소외되고 의지할 데 없는 환자들에게 나누면서 더욱 기쁘게 봉사하는 감사의 삶을 지속하자는 다짐을 했다.

요셉나눔재단 요셉의원 고영초 원장.
요셉나눔재단 요셉의원 고영초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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