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2개월이 지나고 찾아온 한 무기수의 행복 :

100일 만에 벌어진 옥중결혼

“저는 1994. 12. 1. 구속된 무기수입니다. 다시 말하면 28년 2개월 간 감옥에 갇혀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제2회 전국 교정시설 감사 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한 감사노트 첫 페이지에 있는 문장이다. 감사를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 머리말 격으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글이라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감사를 쓰기까지 특별한 일이 있었다는 걸 미리 알아두어야 자신의 감사노트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부탁 같았다.

교도소에 수용되어 있는 000님의 사연을 보자.

“지난 3년 동안 여러 번 가석방 상신을 했으나 탈락하여 하자 있는 인간임을 확인받는 것 같아서 절망했습니다. 작년에 감사일기 쓰기 공모전이 있었던 것 같던데, 응모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지난 100일 사이에 저에게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28년 2개월간 있었던 일보다 얼마나 다른 사건이기에 감사일기를 쓰게 되었을까? 감사노트 뒷부분에 있는 내용을 보자.

“2022년 늦여름 친구의 소개로 한 여성분과 펜팔을 했습니다. 무기수인 저를 색안경 안 끼고 한 인간으로 한 남성으로 보아준 여성분과 친밀감이 형성되어 갔습니다. 그 여성 때문에 그에 걸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착한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고, 친절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펜팔한 지 5개월 얼굴 본 후 100일 만에 부부의 연을 맺었는데, 전혀 성급한 선택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서울에 사는 아내는 여기까지 5시간, 왕복 10시간을 면회 와서 20분을 보고 가도 에너지가 넘칩니다. 일주일에 수목금 일반 접견을 할 때는 강진 집에서 치매 초기의 노모를 봉양합니다.”

100일 사이에 일어난 엄청난 사건은 옥중결혼이었다. 한두 번 만나고 결혼을 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함께 지낼 수 없는 무기수에 치매 초기 시어머니까지 봉양을 하는 결혼 생활, 곧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드라마 같았다.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가 만들어지다

“저는 요즘 제 Wife 때문에 눈을 떠서 잠을 잘 때까지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비록 감옥이고 범죄자이지만 세상이 비로소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팔불출 같지만 어쩔 수 없네요. 내일부터 이 과분하고 감사한 마음을 펼쳐 보이며 그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려 용기를 내어 응모합니다.”

가석방 심사에서 탈락해 낙담하고 있을 때 천군만마 아내를 만나 감사쓰기를 실행에 옮긴 이유는 무엇일까?

2023년 2월 10일 감사일기를 보자.

감사쓰기에 앞서 아내와의 만남을 기록한 내용은 이렇다. 2022년 10월 16일 아내와 어머님을 2시간 동안 특별 면회하면서 나눈 대화이다.

“초월 : 교도소 일과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이것저것 궁금하네요. 아, 물론, 저에 대해서도 궁금하죠.

류진 : 천천히 하세요. 그리고 초월님께서 세상풍파를 많이 겪고 삶의 깨달음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네요.”

옥중서신을 주고받다 얼굴을 마주한 날, 그때를 기억하며 어떤 감사를 썼을까?

“4. Wife가 말하기를 ‘나오면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하고 봉사활동 하면 좋겠다’고 말해줘서 감사합니다. 6. 가정이 있다는 안정감을 준 아내에게 감사 또 감사합니다. 7. 잘 견디고, 30년 가까이 살아온 제 자신에게 감사합니다.”

교도소에서 보낸 긴 세월,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불안했을 것이다. 그럴수록 지금 사람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건 바로 가정을 꾸리는 것 아닐까? 남녀가 만나 자식을 낳고 잘 살아도 못 살아도 알콩달콩 끈끈한 가족애로 사는 아름다운 삶, 그게 숱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일 텐데, 예기치 못하게 인연으로 다가온 아내, 그 아내가 만들어주는 가정, 거기서 오는 ‘안정감’, 다시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매 순간 삶이 감사하게 다가왔고, 감사쓰기는 자연스레 이어지는 일상이 되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특별 면회 다음날을 추억하며 쓴 내용을 보자.

“초월 : 마음 편하게 해줘서 고마워요. 저는 상처가 좀 많은 사람입니다. 비구니가 될까도 생각했고요.

류진 : 삶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군요. 저 같은 무기수도 매일 삶에 감사하며 살고 있잖아요.”

이 날을 떠올리며 쓴 특별 감사 내용은 이렇다.

“상처가 많았을 터인데 상처가 없는 사람처럼 제게 와주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모든 날, 모든 순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요.”

담장 밖에서 상처 입은 사람, 담장 안에서 감사하는 사람, 두 사람의 만남이 가져다주는 최종 종착지는 무엇일까?

000님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내게 왔다는 건, 여태껏 내가 겪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행복’이 왔다는 신호였다는 걸.”

누구나 가져야 하는 행복한 삶을 위해 애쓰던 중 현재보다 더 많이 감사할 이유가 생겼다는 000님이 힘주어 말하는 감사노트 마지막 문장을 보자.

“당신 때문에 새로운 삶을 살아볼 희망과 용기와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또 사랑합니다.”

두 분의 미래에 감사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응원하고 또 응원한다. 감사합니다.

감사노트 부록 : 무기징역을 살면서
000님은 감사노트 마지막에 자신의 소회를 부록이란 타이틀로 담았다. 그 중 지금 수용자들에게 감사쓰기 의욕을 북돋울 수 있는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1. 1994년엔 편지를 쓰려면 볼펜을 허가 받아서 써야 했습니다. 2. 그 볼펜도 오전 10시~오후 4시까지 사용 가능했습니다. 3. 편지는 엽서로 썼습니다. 4. 1995년에 신문 구매가 가능해졌습니다. 5. 1998년부터 TV 시청이 가능해졌습니다. 6. 그 이전에는 2주에 한 번씩 교회당에서 영화 시청이 가능했습니다. 7. 거실에 씽크대는 2004년경에 설치되었습니다. 8. 그 이전에 화장실에서 설거지했고요. 9. 화장실은 재래(在來)식, 푸세식이었습니다. 10. 그 변기에서 구더기, 쥐가 거실로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회고하기 싫은 내용을 담은 건 2023년에는 교정시설별로 상황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감사일기를 쓰기에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물론 집중해서 100감사를 쓸 경우에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쉽지 않겠지만 매일 5감사는 가능할 것이다.
“백 가지 감사하는 마음을 적을 수는 있습니다. 억지춘향식으로 만들어 쓸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라도 감사한 이유를 적어내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으니 법무부 사회복귀과의 의도를 좋다고 생각합니다.”
감사일기를 쓰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쓸 수 없는 시대에 비하면, 이제 고민은 어떤 내용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건데, 그 자체만으로도 억지춘향이든 자발적이든 감사가 만들어내는 새 세상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2023년에 수용환경이 얼마나 좋은지 저의 증언을 통해 간접 경험하게 되면 감사와 행복감까지 느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도소가 낳은 <돈키호테 >, <신곡> 같은 명작은 아니어도 나의 삶을 재편집할 수 있는 감사쓰기로 더 많은 감사와 행복감을 느끼는 수용생활이 되도록 바라는 000님의 마음, 감사합니다.

김서정 기자

소중한 글입니다.
"좋아요" 이모티콘 또는 1감사 댓글 달기
칭찬.지지.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