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교도관 생활에의 회고

국가.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화의 발 디딤을 같이하여, 교정시설 또한 재종 법령의 개정 및 제정을 거듭하며 재소자의 법적 지위 보장을 담보하는 한편, 자율적 의지에 기반 한 민주적이고 다양한 처우기법들을 개발•접목시켜 왔었다. 
그리하여 그 배려적 처우들은 수용생활 곳곳에 빠른 속도로 배어들고 확산되었으니 그 양태가 과연 민주적 행형이라 큰소리 칠만했다.

그러나 미처 자유에 훈련되지 못한 자들에게 주어진 선물로는 지나치게 벅찼었던지, 그 배려에 편승하여 방종을 일삼거나 금기에 대한 발칙한 도전을 서슴지 않는 부류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래에는 배태된 그 악습과 폐단들이 외지고 어둑한 곳곳을 찾아 곰팡이처럼 번지고 피어남에 서슴이 없었다.
악행이란 것이 반복되면 관행이 되기 마련일 터, 수용질서가 그 지경에 이르도록 버려두었다면 이는 예측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몸을 사려 외면했거나 혹은 게을러, 근무자들 스스로 초래한 결과에 다름 아니리라.

사회적 분위기를 핑계 삼는 변명들이 더러 있었으나, 명색이 갇힌 세상을 밝히고 지켜가는 교정시설 근무를 자임했다면, 수용기율과 처우란 언제나 명확하고 일관된 방향성을 가져야함은 귀에 딱지 앉게 들어왔었거늘, 그 따위를 감히 변명이라고 들고 나올 수는 없었다.
2008년 7월 1일부로 교정본부장이 되어 부임했을 때는 전국의 많은 교정시설들이 그렇듯 어지럽혀져 있었다. 그 실태를 두고서는 그 어떤 개혁적 복안도 시행이 불가능할 듯싶었다. 마음이 바빴었다.

그러나 그 어지러움 속에서도 한 점 티 없이 매끄럽게 돌아가는 시설들은 있었다. 그 시설들을 돌아보면 거기에는 틀림없이 이미 이름이 알려진 노련한 기관장이나 과장들, 즉 역전의 용사들이 버티고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듯 청별로 또는 교도소별로 기관장 등 일부 간부의 역량에 수용기강이 의존되는 ‘각자도생‘적 행형이라면, 제반 법규이행의 통일성과 무게가 이미 파편화되고 있음을 반증함에 다름 아니었다.
구부러진 막대를 펴려면 반대쪽으로 힘을 줘 구부릴 수밖에 없는 법이라는 격언처럼, 기울어진 수용기강을 바로잡기 위에서는 그에 맞서는 더욱 강력한 규범적 대오를 준비할 수밖에 없을 터이리라.

수 십 명의 재소자를 계호하는 교도관으로 하여금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들게 할 만큼의 장애 요인이 있다면, 그것들이 얼마나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인가를 뼈아프게 깨우치게 해줌과 동시에 반드시 필벌을 느끼고 경험하게 할 수 있는 대책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었다.
고심 끝에 교정시설 전반에 횡행하는 반칙행위들을 일거에 잠재울 묘책을 내어 놓으니 이름하여 기동순찰팀, 즉 CRPT(Correctional Rapid Patrol Team)였다. 
각종무도 4단 이상인 사범급 고단자들을 교도관으로 대폭 특채하여 법무연수원에서 기본교육과정을 이수토록 하였다. 

이후 기존의 베테랑 직원들을 엄선, 이들과 합류시키니 439 명의 정예요원이 획득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이들을 대상으로 법무연수원에서 CRPT 출범식을 가졌다. 
죄인이 아닌 인간을 바라보며 치유의 손길을 내미는 교도관의 자세를 견지함에 결코 소홀함이 없을 것이며, 허용과 금지를 명확히 하여 수용질서 확립에 첨병이 되겠노라고 선서하게 한 뒤, 화끈하게 뒤풀이를 해준 후 각 시설별로 나누어 배치하였다. 
뒤풀이 때 ‘소맥 화합주’를 그룹별로 돌리자니 나 또한 취기가 거나하였었다. 자리로 돌아오니 노래방 기계가 어느새 풍악을 울리고 내게 먼저 마이크가 주어졌는데, 흐르는 음악이 ‘맨발의 청춘’이었다. 
어둠이 배인 노래이나 야성 또한 품고 있어 망설임 없이 불렀더니, 금세 439명의 떼창이 되어 연수원 강당을 크게 울렸었다.

우리들은 그렇게 야성을 나누고 흩어졌었다.
이들은 배치된 각 교정시설에서 재소자의 소란•난동•화재예방 등 긴급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 조치하고, 기초질서위반 행위자의 상시단속과 사동 및 출역장 등에 대한 간단없는 예방순찰 등 한 틈의 이완을 불허하는 촘촘한 보안근무 자세를 견지해 주었다. 
그들의 활약이 힘입어 교정시설 내 악습의 더미들을 쉬이 제거하고 수용기강의 토양과 기반을
재확립할 수 있었다. 이후 그들의 멋진 제복과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재소자들이 긴장하기에 이르니 직원들의 계호력은 절로 힘을 받았다.
행형 본연의 흐름이 비로소 회복되고 있음이었다.

멋들어진 명분이 언제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는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중요할 터, CRPT라는 명료한 답을 찾아낸 성취감은 뿌듯했다. 이만하면 이제는 희망등대 운동 등 하고 싶었던 일들을 시작해도 될듯 싶었었다.
퇴직한지 1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마주치는 직원들이 CRPT창설을 기억하고 언급하곤 한다. 지금의 교정시설 또한 그 CRPT가 있어, 그 팀들의 보무당당한 발걸음으로 하여 시설의 수용기강을 견지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태희 (전 법무부 교정본부장/ 현 사단법인 재향 대한민국 교정동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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