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훌륭한 지침

제2회 전국 교정시설 감사나눔 공모전에 참가한 안동교도소 신00님의 감사노트를 보면 왼편에는 아포리즘이 오른편에는 감사항목들이 있다. 즉 구체적인 일상의 집합을 꿰뚫어 성찰한 경구들이 형형색색으로 밑바탕을 칠한 크레파스에 빛나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일상의 감사를 적은 내용들이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추앙하는 애인에게 100감사’를 쓴 노트를 보자.

“행복은 우연이 아닌 선택의 문제이다.”

신00님이 쓴 아포리즘이다. 이 문장을 접하는 순간,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바로 반향이 인다. 한 문장으로 다각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장, 이게 아포리즘이다. 이런 문장을 만들려면 일상과 일상 너머에 대한 깊은 관찰과 사색이 필요하다. 그걸 가장 밀도 있게 만들어내는 게 감사쓰기이다.

오른편에 적은 감사항목을 보자.

“96. 내가 속상하지 않게 자꾸 아껴주고 싶고 소중히 대해주고 싶다는 애인에게 감사합니다. 97. 나 힘들다고 응원해줘서 고맙지만 응원 안 해줘도 그냥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힘이 나게 해주는 애인에게 감사합니다. 98. 나랑 같이 장보러 가니까 꼭 부부 같아서 설렌다던 애인에게 감사합니다. 99. 영화 보러 가서 영화보다 더 재밌고 설레서 자꾸 나만 보게 된다던 애인에게 감사합니다. 100. 지금 힘든 일도, 가슴 미어질 것 같은 아픔도 속상함도 모두 다 지나갈 거라고... 힘들고 아픈 일들 자기 두 손 꼭 잡고 잘 이겨내자고 힘을 주는 애인에게 감사합니다.”

현실을 긍정하며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선택이 행복을 주는 것 같다. 이 모든 걸 압축한 “행복은 우연이 아닌 선택의 문제이다”라는 경구는 삶의 훌륭한 지침이 된다.

생각과 느낌이 만드는 몸

신00님은 날마다 반복되는 비슷한 일상에 우울해 했다. 그의 소감문을 보자.

“감옥에서의 10년이란 세월 동안 저는 특별한 것, 커다란 것, 새로운 것에만 의미를 두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익숙한 것, 조그만 것, 낡은 것에는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언제부터인지 사는 일이 시들하고 무미건조해졌고 재미도 없어졌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날마다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보는 거, 만나는 것, 들리는 것마다 익숙한 것들이고 반복되는 것들 뿐인데... 그저 따분하고 사는 일이 지루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자라나자 저는 스스로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기력과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사람은 왜 늙는가>를 보면, “인간은 생각과 느낌으로써 자신의 신체 상태를 바꿀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생명체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정년퇴직 뒤 쓸모없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면 몸이 급속히 나빠지지만, 새로운 일을 찾아 쓸모있다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면 세포는 늙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환경이 변해도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몸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신00님은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감사쓰기에서 찾았다. 소감문을 보자.

“감사쓰기는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저의 일상에 행복과 감사의 마음을 찾게 하고 고귀하게 빛나는 하루하루와 따스한 감정을 가질 수 있게 삶을 대하는 마음을 키우고 온전히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달라진 생각과 느낌뿐만이 아니라 뇌에 마음을 새기는 감사쓰기가 완벽한 인식 전환을 통해 신00님에게 새 삶을 가져다주었다, 달라진 일상이 없는데 말이다.

언어가 만드는 생각과 느낌

감사쓰기는 글쓰기이다. 이는 언어를 사용하는 인식 활동이다. 어떤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느낌은 달라진다. 많은 학자들의 전문적인 이론이 있는데 신00님은 자기만의 언어로 이를 정리해냈다. 소감문을 보자.

“언어는 정말 우리의 사고에 많은 영향을 끼치나 봅니다. 언어가 사람의 사고방식에 선행하는지 사고방식이 언어에 선행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언어는 사람의 인지적 도식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언어로 정립하기 전에는 확실하지 않았던 생각들이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감사의 문장을 찾는 순간 확실하게 공고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꽤 긴 시간 평범했던 일상을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막연하고 거대한 감사를 찾기보다 작고 소소한 순간에 주목하니 생이 감사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학술적 문장이 가능했을까? 그건 감사쓰기로 변해가는 스스로를 면밀히 성찰했기에 개념 정리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게 아포리즘을 낳았고 말이다.

방식을 바꾸면 평화가 온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쓴 100감사 일부를 보자.

먼저 아포리즘이다.

“인생을 바꾸려면 지금 당장 시작하여 눈부시게 실행하라. 예외는 없다.”

감사항목을 보자.

“41. 제가 교도소에 왔음에도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42. 세상이 등 돌려도 항상 저만 바라봐 주시는 것에 감사합니다. 43. 저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셔서 감사합니다. 44. 접견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45. 저를 위해 시를 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화의 상징 넬슨 만델라에 대한 100감사’ 일부를 보자.

먼저 아포리즘이다.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면 느끼는 방식도 바꿀 수 있다.”

감사항목을 보자.

“49. 용서대신 전쟁을 선택하는 지도자들을 설득해야 하고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 속에서 복수의 씨앗은 더욱 무성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만델라에 감사합니다. 50. 무력이 아닌 협상에 의한 평화적 혁명을 이뤄낸 만델라에 감사합니다. 51. 인류에게 평화를 일궈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 직접 보여준 만델라에 감사합니다.”

무료하고 우울한 일상이 감사쓰기로 새롭게 태어났고, 이제는 넬슨 만델라를 통해 평화를 성찰하고 있다. 매일매일 쌓이는 감사가 신00님의 지금 이 순간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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