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언의 마음산책

일주일이 넘도록 계속되는 폭염과 열대야의 기세가 무섭다. 극성맞은 매미도 숨을 죽일 지경이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온열 질환자가 속출하고, 사망자도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이 찜통더위에 사무실 이사를 준비했다. 한강의 아침 윤슬과 여의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망을 갖춘 합정동 시대를 마감하고 김포시로 이사를 결심했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원칙 하나를 세웠다. 최대한 짐을 줄여서 가볍고 간편하게 움직이자는 것이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책이었다. 책을 좋아하고 책으로 먹고사는 직업을 갖고 있다 보니 이삿짐의 절반 이상이 책이다. 이번에는 큰맘 먹고 나눔을 실천하기로 했다. 
꼭 필요한 책 200여 권을 남겨두고 나머지 책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도 하고 가까운 중고서점에 넘기기도 했다. 그래도 남는 책들은 과감히 폐지처리 했다. 
손때 묻은 책을 버리는 일은 정든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만큼이나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덕분에 짐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구석구석 자질구레한 짐들이 많았다. 9년 동안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들이다. 책상 두 개와 책장 두 개를 버렸는데도, 일곱 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나온 짐들이 1톤 트럭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살아오는 동안 단호하게 끊어내지 못한 미련과 집착이 빚어낸 삶의 짐들이었다. 
좀 더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다. 최근 3년간 들춰보지 않았던 서류들과 먼지만 쌓인 잡동사니들을 모두 버리기로 했다. 지금 버리지 못하면 아마 다시 10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을 것이다. 

수일간의 비움과 버림 끝에 사무실엔 책상 하나와 책장 하나, 그리고 작은 냉장고 하나만 달랑 남았다. 이렇게 버리고 나면 공간이 휑하고 쓸쓸할 것 같다는 생각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넓고 쾌적한 공간이 오히려 마음에 여유와 쾌적함을 안겨주는 것 같았다. 
‘진작에 이렇게 살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역시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은 거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이사를 하고 새로운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면 또다시 이런저런 짐들이 쌓여갈 것이다. 짐이 쌓이는 건 오늘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인생의 발목을 잡는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 

히말라야 등정에 나선 전문 산악인들은 정상을 오르기 전에 최대한 짐을 가볍게 꾸린다고 한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들로만 짐을 꾸리고 나머지는 베이스캠프에 남겨두는 것이다. 
멀리 가고 높은 곳에 오르려면 우선 짐부터 가벼워야 한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결심하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 
그것을 끊어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비워야 채울 수 있고, 하나를 취하려면 다른 하나를 놓아야 하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이다. 두 가지를 다 가지려는 마음은 대부분 과욕인 경우가 많다. 과욕은 화를 부르고 화는 파멸로 이어진다. 파멸 뒤에 남는 건 돌이킬 수 없는 회한뿐이다. 회한은 우리의 마음과 삶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고 만다.
몸이 가볍고 마음이 홀가분해져야 우리의 삶도 경쾌해진다. 폭염과 열대야가 무색하리만큼 오늘 하루를 경쾌하게 살아보자. 
공간도 마음도 비움과 내려놓음만이 그 답이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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