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침과 뜸으로 승부한다

김 회장은 나를 보자마자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의사가 뭡니까?" 병 고치는 사람이 의사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의 과장급 이상 의사를 다 동원해도 열 하나 떨어뜨리지 못하는 겁니까?”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김 회장이 내가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최신(最新)의술로 못 고치고 있으니 이젠 최고(最古)침술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습니다.”
옆에 서있는 부인도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네, 낫게 해 드릴게요.”

나에게 오는 환자는 대부분 처음에는 약국에서 약 사먹다가 얼마 지나 병원에 가고 안 나으니 한약을 먹어보다가, 다시 병원에 갔다가 그래도 안 되니까 할 수 없어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침 치료나 한 번 받아보자고 온다. 그러니 설사 내가 그들의 병을 못 고쳐준다 해도 나를 원망할 환자는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잠시, 김 회장이 안정되기를 기다린 나는 기구맥(氣口脈)을 보기 위해 양 손목의 촌구(寸口)를 짚었다. 왼쪽손목의 촌(寸)에서 심(心), 관(關)에서 간(肝), 척(尺)에서 신(腎)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오른쪽 손목의 촌(寸)에서 폐(肺), 관(關)에서 비(脾), 척(尺)에서 명문(命門)의 상태를 살폈다. 김 회장은 오른쪽 촌(寸)에서 폐(肺)의 맥이 강하게 뜨고 양쪽 척(尺)의 맥은 약하게 잠겨 있었다.

“요사이 맘에 차지 않는 일이 있으신가 봐요?"
맥 잡은 손을 놓으면서 내가 묻자 김 회장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맥을 짚으면 그런 것까지 나옵니까?"
“하하! 다리에 힘도 빠지셨지요?”
내 물음에 대답은 않고 김 회장과 부인은 서로 마주 바라볼 뿐이었다.

“욕구 불만 같은 걸로 기(氣)가 발산될 수 없으면 가슴에 열기가 꽉 차 오르고 그러면 폐열(熱)이 되지요. 가뜩이나 감기로 폐(肺)에 열이 몰려 있던 참이었으니 열에 열을 더한 격이 되고 만 겁니다. 그러니 약이나 주사로 열을 아무리 내리려 해도 쉽게 열이 내리지 않는 거예요. 또 그 폐열 때문에 신수(腎水)가 건조해져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이고요."

그 동안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도 열이 내리지 않았던 이유가 마음속 응어리 때문이라고 진단하자, 김 회장은 사실 답답한 일이 있었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입원해 있는 동안 혹시 병원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몹쓸 병에 걸린 건 아닌가하고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구당 김남수 옹의 책 <나는 침과 뜸으로 승부한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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