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배운다

훗날 로마제국 초대 황제가 되는 최고권력자 옥타비아누스., 출처 = Wikimedia Commons
훗날 로마제국 초대 황제가 되는 최고권력자 옥타비아누스., 출처 = Wikimedia Commons

화려한 개선식은 끝났다. 
기원전 29년, 치열한 경쟁 후에 로마 세계의 1인자가 된 옥타비아누스가 누리는 평온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1인자가 되기 위한 투쟁은 목표가 분명했다. 눈에 보이는 경쟁자를 물리치면 되기 때문이다. 이제 공식적인 경쟁자는 없다. 로마 세계를 통일한 1인자 옥타비아누스는 새로운 환경에 직면했다. 

첫째, 50만 명의 군인을 처리하는 문제다. 
안토니우스와 운명을 건 전투를 하면서 군사력은 엄청나게 증가했다. 전쟁에 승리한 군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기와 자긍심이 충만하다. 이 군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악티움 해전 이후에 옥타비아누스가 거느린 군대는 70개 군단으로 50만 명이나 되었다. 이 군단을 효율적으로 감축하는 문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둘째, 로마의 국경선을 어디까지 할 것인가. 
국경선의 위치에 따라 군대의 규모도 달라진다. 국경선을 넓게 잡으면 그만큼 군대의 규모는 늘어나야 한다. 그렇다고 국경선을 무조건 축소하여 잡을 수도 없다. 적정한 국경선을 어디까지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셋째, 정치 체제와 행정개혁의 문제다. 
공화정을 무력화하고 제국주의를 기도했던 카이사르는 암살을 당했다. 공화정을 반대하면 카이사르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공화정과 제국주의를 놓고 줄타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또한, 제국을 통치하는 종합적인 행정 체계를 수립하고, 속주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목표관리(Management by Objectives, MBO)의 달인

이처럼 산적한 당면 과제들을 해결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목표관리(Management by Objectives)다. 목표관리란 무엇인가.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목표는 장기목표와 단기목표가 있다.  장기 목표는 5년, 10년, 20년, 30년, 40년도 걸릴 수 있다. 장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단기 목표, 중기 목표를 설정하여 목표를 달성해나가야 한다. 

옥타비아누스에게 필요한 개념이 바로 목표관리였다. 그는 로마 제국의 기본 목표를 어떻게 정했을까. ‘팍스 로마나(Pax Romana)’, 즉 로마에 의한 평화를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제시했다. 이는 카이사르의 클레멘티아(Clementia, 관대)와는 다르다. 평화를 유지하려면 국경선 확장을 포기하고 현상 유지를 해야 한다. 평화를 유지할 때 군대 축소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정치체제는 제국주의를 지향하되 단기적으로는 공화정으로 복귀하는 것으로 정했다. 카이사르가 설계한 제국주의를 향하되 공화정을 형식적으로 만드는 과업을 정했다. 
카이사르는 원로원 주도의 공화주의자들이 대세를 이루는 상황에서 홀로 개혁을 구상하고 실천에 옮겼다. 그는 최고권력자가 되었을 때 급진적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5년 동안에 과격한 개혁을 추진하다 보니 다양한 적진이 구축되어서 결국 암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급진적인 개혁은 반대파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옥타비아누스에게는 카이사르의 급진 개혁의 실패가 반면교사가 되었다. 카이사르가 설계해 놓은 제국주의로 가는 마스터 플랜은 유지하되 접근 방법은 점진적이고 유연하게 바꾸었다. 장기목표는 카이사르와 같다. 그러나 단기목표는 원로원을 중시하고 원로원의 협조 위에서 공화정의 위력을 점점 약화시켜 궁극적으로 제국주의로 가는 방향을 정한 것이다. 

 

카이사르와 비교할 때 옥타비아누스는 유리한 점이 있었다. 
우선 내전이 14년 동안이나 장기화됨에 따라 철저한 공화주의자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살아있어도 노쇠하여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또 하나 옥타비아누스는 군사에서 '아그리파'와 외교에서 '마이케나스'라는 동년배의 탁월한 협력자를 얻을 수 있었다. 이들과 함께 팍스 로마나를 기치로 신생 로마제국을 지혜롭게 출발시킬 수 있었다. 

현실에는 ‘보고 싶은 현실’과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이 있다. 카이사르는 “누구나 모든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카이사르는 보고 싶은 현실뿐만 아니라 보고 싶지 않은 현실도 보여주려 노력했다. 

반면에 옥타비아누스는 보고 싶어 하는 현실밖에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현실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자신은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면서 철저한 목표관리를 통해 목표를 차근차근 이루어나갔다. 카이사르와 옥타비아누스가 가진 목표는 동일했다. 그러나 도달하는 수단은 각각 달랐다. 옥타비아누스는 “동일한 목표, 다른 수단”으로 접근했다. 이는 옥타비아누스가 직면한 환경이 카이사르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첫째, 옥타비아누스는 신중한 성격이었다. 그는 몸이 약했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매사에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는 스타일이었지만 치밀하고 기획력이 뛰어났다. 

둘째, 카이사르의 암살을 통해 교훈을 얻었다. 개혁을 하다가 저항에 부딪히면 어떻게 되겠는가. 카이사르처럼 암살당하면 목표 자체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옥타비아누스는 이 사실을 깨달았기에 급진적인 개혁을 선택하지 않았다. 나이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고 권력자가 되었을 때 카이사르의 나이는 51세였으나, 옥타비아누스는 33세에 불과했다. 옥타비아누스는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점진적인 개혁을 선택한 이유였다. 

양병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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