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요셉나눔재단 요셉의원  고영초 병원장.
요셉나눔재단 요셉의원  고영초 병원장.

오랫동안 나의 버킷리스트의 일 순위는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가 있었다. 나는 2018년 2월에 33년간의 교수직을 마치고 제 2의 삶을 시작하기 전에 이 꿈을 실현하려 틈틈이 훈련을 해왔다. 그러나 정년 후에도 건대병원 신경외과 자문 교수로 남아 외래진료와 수술을 지속하면서 ‘산티아고길 걷기’는 5년 후로 미뤄졌다. 그런데 작년 9월, 오랫동안 봉사해왔던 ‘요셉의원’의 원장에 추천되어 요셉나눔재단 이사회를 통해 금년 3월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결국 ‘산티아고길 걷기’는 꿈으로만 남게 되었다. 

올해 36주년을 맞은 요셉의원은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환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본다’는 이념으로 설립된 최초 무료 자선병원으로 1987년 신림동 관악시장의 허름한 건물 2층에서 시작되었다. 이 설립이념을 만든 초대 선우경식 원장님( 2008년 4월 63세로 타계)은 대학병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림동 ‘사랑의 집’에서 후배들과 주말에 가난한 환자들에 대한 진료를 시작했다. 주말 진료를 지속하면서 상설 의료기관의 필요성을 느꼈던 선우 선생님은 신림동 난곡지역 의료협동조합, ‘사랑의 집’ 선교사들, 수도자들과 서울대교구 사회복지회 도움으로 관악종합시장 수퍼마켓 건물 2층에서 1987년 8월 29일 요셉의원을 간판을 내걸었다. 

초기 십여 명의 의료 봉사자 중 한 사람이었던 나는 36년째 활동을 이어오다가 지금은 약 130명의 전문의들이 봉사하는 요셉의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로지 후원금에만 의존하여 운영된 요셉의원은 설립 당시 ‘3개월이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떨쳐내고 기적처럼 36년째 이어오고 있다. 후원자들의 숫자도 초기보다 열 배 이상 증가하였다. 해외 의료봉사에도 필리핀 요셉의원을 설립, 해외 무료진료를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산티아고길 걷기’의 꿈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요셉의원이 안고 있는 시급한 난제인 영등포지역 재개발 계획에 따라 요셉의원 이전 계획을 차질없이 진행하는 것과 더 많은 의료봉사자들을 확보하여 양질의 진료를 노숙인들과 쪽방촌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더 큰 꿈이 되었다. 나아가, 요셉의원에 오는 환자뿐 아니라 더 열악한 건강 상황에 처한 환자들을 방문해서 상담과 간단한 검사 그리고 처치까지 가능한 방문 진료 체계를 갖추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초음파실, 내시경실, 작은 수술실과 처치실 등의 공간을 마련하여 외래 환자들이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는 한편, 입원이나 응급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을 보낼 수 있는 상급 병원들과의 협력 관계를  더욱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나는 어릴 적 꿈이 성직자가 되는 것이었는데, 고교 2학년을 마치고 신일 고등학교 3학년으로 편입하여 1971년 서울의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본과에 진입한 1973년부터 서울과 성남시 변두리 지역으로 주말 진료 봉사를 시작하였고 1974년부터 신림동 난곡 지역에서 주말 진료를 본격적으로 해왔다. 성직자가 되는 길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시작된 의료봉사였지만, 봉사를 통해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보게 되면서 의사로서의 지난 46년이 참으로 보람되고 행복했다고 자부한다. 요셉의원 후원자들, 봉사자들, 직원들에게 감사의 맘과 함께 선우 원장님의 설립이념에 맞는 요셉의원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 본다.

요셉의원 원장을 마치고 오년 후 미뤄두었던 산티아고길 걷기를 위해 오늘도 이만보 걷기를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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