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환의 감사스토리텔링

아버지의 해방일지 2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는 ‘빨치산 아버지가 살려준 20세 순경’ 출신 노인 조문객이 나옵니다. 은빛자서전 인터뷰 대상자였던 옥천군 군서면 김재식 어르신이 떠올랐습니다. 
“전쟁이 터지고 얼마 후 ‘이장이자 부자’인 아버지는 피난을 떠났고 ‘보도연맹 출신’인 최시경이 인민군과 함께 군서면에 들어왔다. 하지만 전세가 역전되자 그들은 서대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었다.” 

북상하는 국군과 함께 귀향한 아버지가 어느 날 심야에 최시경 일당에게 끌려갔습니다. 모두 죽었을 것이라 했지만 아버지는 생환(生還)했습니다. 
“전쟁 초기 동네 사람을 죽게 놔둘 수는 없다며 보도연맹 예비검속 정보를 알려줬던 아버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다음 최시경은 조용히 고향을 떠났다.” 
사람을 살린 것은 이념이 아니라 인륜이었습니다.


감사의 표현 도구

TED에서 강연한 호주의 감사운동가 헤일리 바톨로뮤는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일상의 감사를 기록합니다. 우울증 때문에 삶의 막다른 골목에 놓여 있을 때 누군가 그녀에게 감사 연습을 해보라고 조언해주었죠. 

영화감독인 그녀는 날마다 즉석 사진을 찍기로 했습니다.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기 시작한 바질 화분을 포착한 사진을 노트에 붙이고 그 옆에 펜으로 적었습니다. 
“갓 심은 바질이다. 정원 가꾸기에 푹 빠졌다. 완전 좋아!” 
무지개 우산을 들고 있는 딸아이의 사진에는 이런 문구를 적었고요. 
“나는 비가 좋다. 귀여운 우산들을 쓸 수 있다.” 

그녀의 영향을 받은 화가 로리 포트카는 그림으로 감사를 표현했고, 이웃들과 감사 그림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감사는 말과 글만이 아니라 사진, 그림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난중일기의 위로

10년 넘게 감사일기를 써온 저는 <난중일기>를 읽다 두 번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공백을 두려워 말라’가 첫 번째 위로입니다. 
저는 온 가족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작년 11월 23일부터 38일 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도 주로 연말에 일기를 쓰지 않은 적이 여러 차례 있으시더군요. 

‘실명을 두려워 말라’가 두 번째 위로입니다. 
저는 감사일기는 물론이고 ‘30초 감사’에도 실명을 씁니다. 감사운동 현장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을 밝히고 그들의 사연을 소개했지요. 그런데 이순신 장군도 <난중일기>에 나오는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같이 실명으로 밝히셨더군요. 

<칼의 노래>에도 “이름만 전하고 이야기는 전하지 않는 그 많은 넋들”이란 구절이 있지요. 난중일기에서 감사일기의 활로도 찾아봐야겠습니다.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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