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칼럼

소련 니키타 후르쇼프 수상과 미국 케네디 대통령.(왼쪽부터)
소련 니키타 후르쇼프 수상과 미국 케네디 대통령.(왼쪽부터)

스탈린 사후 1953년부터 1964년까지 소련을 통치했던 최고권력자가 있다. 과거에는 후르시초프라고 했고 지금은 후르쇼프로 표기되는 인물이다. 《뉴욕 타임스》 모스크바 특파원 해리 슈워츠는 "후르쇼프는 석화된 구조물의 문과 창문을 열었습니다."고 썼다.

우리는 구 소련을 철의 장막이라고 했다. 그 철의 장막에 문과 창을 연 것이 후르쇼프이다.

그는 미국과의 우주 경쟁에 있어서 소련의 전성기를 장식한 인물이다. 이 시대에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1호를 성공시켜 스푸트니크 쇼크라는 말을 유행시켰고 미국에 큰 충격을 주었다.

1956년 10월 11일, 후르쇼프 수상은 유엔 총회에서 연설을 하며 서류를 읽는 도중 미국 대표들이 자신의 연설을 방해하려고 한다며 책상 위에 주먹을 휘두르며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라고 외치면서 구두로 책상을 친 사건이 있었다. 후르쇼프의 발언은 당시 소련의 국내에서 매우 인기있게 받아들여졌다.

구두 사건은 전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은 후르쇼프 수상의 행동을 "도발"이라고 비난했고, 양국 관계는 악화되었다. 그러나 구두 사건은 또한 냉전 시대의 긴장을 완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후르쇼프 수상의 행동은 미국에게 핵전쟁의 위험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양국은 이후 핵무기 감축 협상에 나서게 되었다.

이러한 후르쇼프를 변하게 한 것이 두주간의 미국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최고 통치자로서는 드물게 후르쇼프는 1959년 9월 25일부터 10월 5일까지 2주간 미국 농촌은 물론 대도시를 둘러 봤다. 이 여행중에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정상회담도 있었지만 미국의 큰 도시들과 아이오와 주립대학의 농업 교육 프로그램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이 여행을 끝내고 가장 인상적인 것이 무엇이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미국 사람들이 매사에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수행원들에게도 미국이 우리 보다 잘 사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수행원들이 미국 사람들이 매사에 감사하는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3년 전에 구두를 벗어들고 책상을 두드리던 그는 강제수용소 문을 열어 수백만 명을 풀어주었고 솔제니친이 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출판을 허가하여 스탈린 독재와 강제 수용소의 실태를 고발하여 1970년 노벨 문학상을 받게 했다..

베를린 장벽을 쌓아올리고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했던 그는 소련의 재래식 병력을 일방적으로 감축했으며, 미국과의 화해 시대를 주도적으로 열었다.

후르쇼프는 평소 소련에 대한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내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인 예브게니 옙투셴코를 1971년 죽기 일주일 전에 만나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당신을 탄압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시인이라서 진실을 말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정치가였다. 정치가는 쫓겨나지 않으려고, 그저 소리지르는 수밖에 없는 역겨운 직업이다" 

그는 옙투셴코에 대한 탄압을 사과했고, 옙투셴코는 후르쇼프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후르쇼프의 이러한 변화는 여행을 통하여 감명받은 미국인들의 감사하는 삶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여진다. 논리의 비약일지는 모르나 이러한 것들이 1991년 소련의 붕괴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어쨌든 적어도 미국 여행이 후르쇼프를 변화시킨 것은 확실하다.

 

제갈정웅 편집인.
제갈정웅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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