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침과 뜸으로 승부한다

1985년 여름, 서울 동대문, 운동용구 제조업체의 사장인 L씨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침술원 안에 들어섰다. 뼈대는 큰 편이나 살이 없는 그는 육십 대 중반인데 나이 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함께 온 부인이 부축하여 진료대에 앉히자마자 그는 머리가 아프다며 하소연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이라는 대학병원에 2주일이나 입원해서 진찰을 받았는데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 좋다는 장비로 머리를 샅샅이 검진했지만 두통을 일으킬 만한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제는 진통제를 먹어도 머리 아픈 게 낫지 않습니다."
나는 환자를 진료대에 눕히고 얼굴과 손발을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머리를 아프게 하는 뿌리는 어디일까?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으니 머리 쪽은 아닐 테고... 어느 장부서 온 증상일까? 피부를 살펴보니 마르고 거칠거칠 윤기가 없다. 피부는 폐가 주관한다 하였으니, 폐에 이상이 있어 살갗이 거칠어진 것은 아닐까? 확인하기 위해 폐가 있는 가슴에 양손을 대어보았다. 양쪽 가슴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한쪽이 푹 꺼진 느낌이 왔다. 확진을 하기 위해 맥을 잡았다. 맥(脈)을 잡아보니 맥이 얕고 떴다. 부맥(浮脈)이었다. 오른쪽 손목의 촌 (寸)에서는 튕겨 나갈 듯한 현맥(脈)이 잡혔다. 폐에 이상이 있음이 분명했다.

“폐를 앓은 적이 있으시죠?"
가슴에서 손을 떼며 그에게 물었다. 그는 잠시 눈을 껌벅이더니 아주 오래 전 일인데 어떻게 그걸 알았느냐며 반문했다. 나는 우선 몸 전체 기운의 균형을 위해서 양다리의 삼리(三 里)혈, 양팔의 곡지(曲池)혈, 가슴과 배 사이의 중앙인 중완(中)혈에 먼저 침을 놓았다. 그리고 폐의 병을 다스리는 여러 혈자리를 잡고 뜸을 떴다. 

등에 유침을 해 둔 동안 L씨는 엎드려서 잠이 들었다. 침을 빼면서 내가 “아직도 머리가 아픕니까"고 물으니 그는 그제야 "어, 머리 아픈 게 싹 없어졌네."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일이라도 당장 병원에 가서 폐를 진찰 받아 보세요."
나는 그의 병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를 설득해 일단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도록 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났을 때, L씨의 부인이 혼자 침술원을 찾아왔다. 
"그 양반 병원에서 폐암인 게 밝혀지고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어요." 
한숨을 크게 내쉬던 부인은 병명이라도 알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구당 김남수 옹의 책 <나는 침과 뜸으로 승부한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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