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교도관 생활에의 회고

1997년 일선 보안과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그 당시 본부로부터 모든 수용거실의 TV 설치를 지시해 왔었는데, 내려온 예산이라고는 고작 TV설치를 위한 전선연결 작업 분에 그치고 있었다. TV는 교정위원 및 사회단체 등으로부터 재주껏 기증 받아 설치하라는 구차한 암시가 뒤따랐다. 
그런 대응이 대놓고 통용되던 시절이었다손 치더라도 이런 따위의 작태까지 용인되어서는 아니될 듯싶었다.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가만히 두어도 어지럽기 짝이 없는 바닥에 이런 난리법석까지 더하니, 호시탐탐 행형의 틈새를 엿보는 검은 군상들에게는 물실호기(勿失好機)라고, 그야말로 둘도 없는 기회로 여겨졌을 것이리라. 
기증을 핑계로 접근하는 조폭 등을 비롯, 경계를 요하는 부류들의 장난과 사술들을 간파하여 받을 것 물리칠 것 구분하고 털어내며, 그 놈의 TV를 참 힘들게 모으고 또 설치해야 했었다. 교정현장 근무자들만 자칫 덤터기 쓸지도 모를, 온통 모래투성이 같은 업무를 치루어내며 땀 흘렸던 것이다.

이후 수많은 욕설의 분칠을 하고, 전국의 교정기관 거실마다 TV가 완비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시설별로 영화나 운동경기의 중계방송을 방영하는 등 진일보한 수용처우가 이루어 진듯 했으나, 그랬던 말던 획득과정의 그 씁쓸했던 기억들로 하여 일부러라도 관심을 두지도, 돌아보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십 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교정본부장이 되었을 때, 내게는 한낱 찝찝한 추억의 산물일 뿐이었던 일선의 그 TV 시스템들로 하여,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욕구와 의지를 불사르게 될 줄은 차마 몰랐었다. 그 아이러니컬 한 상황은 정녕 당혹스러웠다. 알 수 없는 시간의 미래는 그래서 늘 두려운 건지도 몰랐다.

본부장으로 부임하고 보니 이미 교화방송국 출범을 위해 바쁘게들 움직이고 있었다. 관계직원들의 노력에 힘입어 다행히 방송국 운영에 필요한 기기들을 준비하고 방송센터까지 마련해 두고 있었다.
그러나 방송국 운영을 위한 전문 인력이 전무함은 물론, 방송의 편성. 송출 등에 대한 구체적 방안들도 아직 준비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나서야만 할 것 같았다. 아니 나서고 싶었다. 우리의 삶이 매 순간 선택하는 것이라면, 뒤돌아보아 먼지 묻은 마음의 찝찝함일랑 훌훌 털어버리고, 희망의 작은 등대 하나쯤은 나의 선택으로 이 작업에 세워 두고 싶었다. 문득 그러했었다.

방송 작가, PD, 아나운서 등을 서둘러 교도관으로 특채하여 장차 방영될 프로그램의 연구, 개발에 전념토록 조치했다. 재소자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방송프로그램의 자체 제작과 동시에, 전국 교정기관별 단일채널로 운영하던 방송업무 일체를 중앙의 교화방송센터에 연결, 통합시켰다. 
그리하여 2008년 12월 드디어 그 시험방송을 송출하기에 이르니,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전대미문의 교화방송국이 이윽고 그 출범의 깃발을 드높인 것이었다. 다만 감개무량할 따름이었다.

교화방송국은 법무부 청사 1층에 자리 잡았는데, 스튜디오, 주조종실, 편집실, 서버실 등으로 구성되었고, 자체 영상카메라 5대 까지 갖추었으니 웬만한 케이블 방송을 능가할 듯싶었다. 개국 초기에는 일반 TV방송을 편집해 내보내는 단순 송출기능에 머물렀으나, PD, 작가, 아나
운서 등 채용된 전문가들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자 재빠르게 자체프로그램들을 제작. 송출하기 시작했다.
재소자들의 마음의 소리에 조응하고자 방송은 일반채널, 여성채널, 교육채널, 라디오채널 등 4개 채널로 분리하여 운영, 송출되었다. 
그것으로 하여 성취동기를 잃어버린 많은 이들이 삶의 파고를 헤쳐 나갈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따뜻한 말로라도 희망이라는 단어를 되새겨 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종래에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가, 이른바 재소자가 가족에게 보내는 영상편지인 "가족의 소리"를 제작, 전 교정시설에 방영했더니 그 호응도가 기대이상으로 컸다. 
그래서 그 영상을 품고 당해 가족을 방문하여 보여 준 후 동의를 얻고서는, 가족들의 근황과 소망, 당부 메시지 등을 영상으로 담아 "쌍방향 영상편지" 라는 프로그램으로 제작. 방송하니 그 반향이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영향을 주고받고 감응을 전파하며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마음을 터놓게 하니, 그 프로그램은 수형자들의 동류의식에 얹히어 큰 인기를 얻기 마련이었다. 그래서인지 영상편지의 주인공을 자원하는 자가 적지 않아 가급적이면 자식을 둔 여성재소자와 면회 오기 힘든 노인가족 등을 우선 배려하여 프로그램을 제작하도록 했다.

교정 관계자가 아니고는 누구도 알 수 없게 꼭꼭 숨어 있는 방송이지만, 대한민국의 교화방송은 이미 전 세계 많은 교정인들의 표상이자 부러움의 대상이 된지 오래되었다. 
모쪼록 더욱 크고 많은 울림을 담아, 많은 이들의 가슴에 다시금 내장된 무수한 결심과 언약들을 격려하고, 허기진 영혼들을 채워줄 수 있는 방송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태희 (전 법무부 교정본부장/ 현 사단법인 대한민국 재향 교정동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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