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언의 마음산책

벌써 9월 하순이다. 한낮의 태양은 아직 뜨겁기만 한데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해가 떨어지면 어둠보다 먼저 가을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귀뚜라미, 쓰르라미, 여치와 함께 이름 모를 가을벌레들이 협연을 펼친다. 여름 내내 폭염에 지치고 폭우에 시달린 영혼을 토닥여주고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다.

가을을 실감하게 하는 또 하나는, 하루가 멀게 현관 앞에 당도하는 택배 상자다. 들깻잎과 고추, 배추 같은 푸성귀부터 시작해서 단내 나는 포도와 잘 여문 사과와 배까지 온갖 곡식과 과일들이 연이어 도착한다. 
가을은 그렇게 택배로, 새벽 배송, 총알 배송으로 당도한다. 
택배 상자를 열어젖히면 고향의 냄새, 가을의 향기가 훅, 덮쳐오고, 흙먼지처럼 붙어 나오는 보내는 이의 정성과 마음이 읽힌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고 고급스럽게 포장된 백화점 선물세트보다 고향에서 올라온 투박한 택배 상자에 더 마음이 가는 이유다.

고향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오늘 거래처 사람들하고 민어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그런가 갑자기 자네 생각이 나더라고. 그래서 얼른 2인분 포장해서 택배로 보냈네. 맛만 좀 보라고.” 
술기운을 빌어서 무심한 듯 툭, 내뱉는 친구의 한마디에 가슴 깊은 곳에서 따스한 온기가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그래 마음이란 이렇게 전하는 것이다. 과하지 않게, 무겁지 않게. 적당히 가볍고 경쾌하게 말이다. 

며칠 전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보낼 맞춤한 선물을 고르느라 한 시간 이상 웹 서핑을 한 적이 있다. 과하지도 않고 너무 빈약하지도 않은 적당한 선물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고심 끝에 적당한 가격의 한우 세트를 하나 골랐는데, 내용물이나 가격보다 선물 세트의 이름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름 하여 ‘고마워서 어찌하누.’ 보내는 이의 마음을 경쾌하게 잘 담아낸 이름이었다. 그 한마디면 친구도 내 마음을 헤아려 주고 유쾌하게 받아줄 것만 같았다. 고민 없이 선물하기 버튼을 눌렀다. 친구도 내 의도를 알아채고 금세 문자를 보내왔다. 
‘받기만 해서 어찌하누.’ 그래, 이런 게 이심전심, 염화미소가 아닐까.

추석이 코앞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고마운 분들에게 어떤 선물을 보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아마도 모든 이들의 공통된 고민거리일 것이다. 이번에는 고민의 방향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선물의 내용보다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것인지를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선물 상자에 짧은 손 편지를 동봉하거나 간단하게 모바일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너무 길지도 무겁지도 않게, 짧고 위트 넘치는 글을 남겨보자. 
그것을 보고 상대방이 픽, 한번 웃을 수 있다면 선물의 내용이 무엇이든 아마도 잊지 못할 인생 선물이 될 것이다. 

선물은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행위이다.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고, 감사함에 대한 답례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내용물도 중요하다. 
상대방이 평소 즐기는 음식이나 취미 생활에 관련된 물건을 선물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관심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정성과 마음을 담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이번 추석에는 선물 상자에 짧고 간결한, 경쾌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쪽지나 손 편지를 동봉해 보자. 보내는 이도 받는 이도 마음속에 둥실, 한가위 보름달이 떠오를 것이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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