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더스요양병원 노민철 대표원장

세상의 모든 이별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이별은 ‘사랑하는 존재와의 헤어짐’입니다. 반면, ‘남겨진 존재’에게는 치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치유의 시간을 가장 의미있게 보내는 방법은 사라진 존재에 대한 고마움을 기억하고 상실의 마음을 담담히 글로 표현하는 ‘마음 드러내기 활동’입니다. 위더스요양병원 대표원장인 노민철 의사의 글은 ‘글쓰기를 통한 감사치유’의 좋은 사례를 보여줍니다. / 이춘선 기자

 

위더스요양병원 노민철 대표원장.
위더스요양병원 노민철 대표원장.

서로를 살뜰히 챙기신 우리 부모님은 부산에 살고 계셨다. 아버지는 92세, 어머니는 88세로 64년동안 해로한 부부이다.

아버지는 통풍과 발목 관절염으로 보행이 불편하셨고 어머니는 4년 전 진단받은 치매로 이제는 말기 치매 증상으로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계셨다.

주 5일 집에 찾아오는 요양보호사와 일주일에 3번 이상 오는 장남인 형의 도움으로 서로를 의지하여 불편한 몸일지라도 집에서 간신히 생활하고 계셨다.

9월 27일. 그 날은 아버지 몸에 갑작스런 호흡곤란 증상이 발생했는데 다행히 형이 일찍 발견한 덕분에 경기도 광주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나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라고 잠시 고민하다가 부산에서 요양병원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연락을 해 구급차를 급히 보내 입원을 시켰다.

이틀 후인 9월 29일, 아버지께서 입원하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산소 포화도가 떨어져 언제 임종 하실지도 모르니 빨리 한번 보러 오라.”는 연락이었다.

그날 저녁 급히 차를 몰고 부산 집으로 간 나는 꼼짝없이 3일 동안 어머니 옆을 지키던 형을 좀 쉬라고 집으로 돌려보낸 후 어머니와 함께 마지막 밤을 보냈다.

9월 30일 아침 10시. 아버지를 뵙기 위해 어머니와 형을 모시고 갔을 때 아버지는 힘겹게 숨을 내쉬고 계셨다. 나는 아버지 귀에 대고 마지막 말을 건넸다.

“아버지 제가 어머니를 잘 모실께요. 형하고도 잘 지낼께요.”

제 말을 알아들으신 아버지는 말을 하고 싶은데도 나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셨다.

아버지를 뵙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는 “너그 아버지 죽는갑다, 나는 이제 우짜노!”라며 불안해 하셨다.

“엄마! 아들이 둘 씩이나 있는데 무슨 걱정이요.”라며 안심을 시켰지만 사실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엄마! 우리 집에 갑시다!”

차마 치매질환을 앓고 계신 어머니를 홀로 둘 수 없었다. 결국 나의 근무지이자, 내가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요양병원으로 엄마를 모시기로 결정하고 차를 몰았다.

그렇게 어머니를 모시고 형과 함께 우리의 ‘마지막 장거리여행’은 시작 되었다.

때마침 그 날은 추석 다음날이다보니 귀경 차량이 많아 내비게이션을 검색해보니  부산에서 경기도 광주까지 6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드디어 오후 1시30분에 부산에서 출발해 고속도로를 들어서니 오랜만에 하는 외출이라 그런지 어머니께서는 “오랜만에 나오니 좋긴 하다.”라며 어린애처럼 웃으셨다.

그러나 오후 3시30분 쯤 차 안에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자 스카프를 얼굴에 감고 괴로운 표정을 지으시며 “이제 집에 가자. 힘들다!”라며 아기처럼 칭얼대기 시작했다.

저녁이 가까워지는 오후 6시쯤 되어 어둠이 짙어지자 불안 장애가 있으셨던 어머니는 극도의 불안증상을 보이셨다.

“집에 가자.”고 조르기 시작하셨다. “조금만 더 있으면 집이니 걱정 마시라.”고 안심 시키고 형제는 번갈아 가며 운전을 계속했다.

덕분에 내가 일하고 있는 병원인 위더스요양병원(경기도 광주 소재)에 도착하니 8시30분쯤 되었다.

병원입구에 도착한 우리 차를 본 간호사들이 휠체어를 가지고 와 어머니를 병실로 모시고 들어갔다.

하지만 어머니는 재차 “여기가 어디고? 와 여기 왔노? 너거 집 가자, 나는 여기서 못 잔다.”라며 침대에 오르기를 완강히 거절하셨다.

나는 불안해하는 어머니 옆에 앉아 30분 동안 기나긴 설득 끝에 겨우 진정제 주사를 맞으신 어머니를 겨우 침대에 모실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주무시는 것을 확인한 후 밖으로 나오니 형은 울고 있었다. 우리가 서울에 올라온 이틀 후에 아버지께서는 운명을 달리하셨다.

장례식을 치르는 이틀 내내 어머니는 한숨도 주무시지 못하고 불안해하시다가 결국 넘어져 쇄골 골절이 되는 부상을 입으셨다. 몸이 견뎌내지 못한 탓이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힘들어하시는 그날, 어머니께 응급처치를 해드렸는데 감사하게도 어머니는 모처럼 길고 평안한 잠을 깊게 주무셨다.

어머니와 함께 한 이틀 동안 일어난 '평온하고 평화로운' 상황들을 겪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힘들어하시는 어머니와 우리 형제를 위로하려고 아버지의 영혼이 찾아오셨나 보다.’

2023년 9월 30일. 아직도 그날의 일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계속 떠오른다. 

글=위더스요양병원 노민철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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