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교도소 수용자의 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제1회 감사쓰기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자 서울남부교도소 000입니다. 감사나눔 신문사 관계자 여러분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지요.
저는 여전히 매사에 고마움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고 있습니다.
1회 시상식이 불과 몇 달 전일 같은데, 어느덧 계절이 여러 번 바뀌고 가을이 익어가는 10월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감사쓰기 덕분에 제게 벌어진 기적 같은 순간들을 여러분께 전해드리기 위함입니다.
작년 시상식 소감발표에서 솔직하게 말씀 드렸다시피, 공모전 참여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처우와 향후 가석방 심사에 보탬이 된다는 소식에 귀가 솔깃했고, 상금 또한 적지 않아서 어려운 형편의 가족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가족 만남의 날'기회를 얻어 암투병 중이시던 홀어머님을 마지막으로 한 번 안아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리고 고맙게도 최우수상이란 영예를 얻었지요.

시상식에 참가한 아내와 두 딸은 부끄러운 가장인 제게 변함없는 믿음과 사랑을 보여주었고, 받은 상금은 가족에게 송금하여 요긴하게 사용했습니다. 다만 급격히 병세가 악화된 어머님은 거동이 힘들어 저를 만나러 오지 못하셨습니다.
어머님은 5월 중순경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기셨습니다. 통화할 때마다 어머님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지만 항상 웃어주려 애쓰셨습니다. 행복했던 추억들을 얘기했습니다. 홀어머니와 외아들 단 둘이서 이 험한 세상 헤쳐 오느라 고생 많았다며 서로를 다독였습니다. 누구의 탓도 원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미안함도 잠시 접어 두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고맙고 또 고맙다는 말을 자주 나눴습니다.

감사쓰기 이후에 저뿐 아니라 가족들도 모두 감사하다는 표현을 더 많이 하게 된 덕분입니다.
어느 금요일 어머님과 통화 후, 주말이 지나고 수일간 통화가 되지 않아 아내에게 전화했더니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아니 오지 않기를 바랐던 순간이 찾아 온 것입니다. 어머님은 팔순을 몇 달 앞둔 5월 30일에 아내가 임종을 지키는 가운데 하늘나라로 올라 가셨습니다.
어머님 장례를 치를 상주는 저 한 명뿐인 상황. 저는 귀휴를 신청했지만 코로나 감염병의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데다가 아직 제 형기의 절반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를 할 수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사정은 안타깝지만 귀휴 허가는 힘들 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제 잘못에 대한 통회, 불효함의 자책, 상실의 고통. 1초가 1년 같은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렇게 오전시간이 끝나갈 무렵 담당 계장님이 제게 와서 한 마디 하셨습니다.
"귀휴 허가 났으니 준비하세요. 오후 2시에 데리러 올 겁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믿기지 않는 3일간의 귀휴가 허락되어 어머님 가시는 길을 직접 모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일가 친척들만 찾아주시는 소박한 장례식을 치르던 중, 우리 가족만 남은 조용한 시간에 아내가 병실에 남은 어머님의 유품이라며 몇 가지 물건을 꺼냈습니다.
휴대폰, 작은 손가방, 유언장, 그리고 뜻밖에도 제가 쓴 감사쓰기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향한 100감사를 깨알처럼 작게 적어서 '어머니'라는 큰 글자를 표현한 종이였습니다.
제2회 감사쓰기 공모전에 참여했던 작품을 복사해서 보내드렸는데, 그걸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내가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병문안 오시는 분들마다 이걸 꺼내 보여주면서 우리 아들이 써준 거라며 엄청 자랑하셨어.."
저는 그 자리에서 오열을 하고 말았습니다. 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갇힌 이 못난 아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을 쏟아주신 어머님. 어머님의 숭고한 사랑을 가슴 한켠에 간직하며 남은 삶을 올바로 살겠다는 다짐을 했던 3일간의 귀휴였습니다.

이렇듯 감사쓰기는 제게 여러 기적을 보여주었습니다.
첫 번째 기적은 가족들도 감사쓰기에 동참한 것입니다. 처음엔 30감사 쓰기도 어색해 하던 딸들이 두 번째 감사쓰기에서는 50개씩 써주었습니다. 내용도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변했습니다. 전화와 서신에서도 감사하다 고맙다는 말이 늘어났습니다. 수감기간 동안 생겨난 아내와의 갈등과 앙금도 많이 해소되어 다시금 가족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는 귀휴였습니다.

두 번째 기적은 귀휴를 허가 받은 것입니다. 감사쓰기 최우수상을 받은 경력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확신합니다.
마지막 기적은 어머님과 제가 아름다운 이별을 한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는 것을 알지만 막상 내 일이 되면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어머님과 저는 서로 감사했다는 얘기들을 나누며 마지막 시간을 곱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제가 쓴 감사 글을 보며 웃으셨다는 어머님을 떠올리면 제 마음도 슬픔 보단 고마움으로 가득 차오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겪은 감사쓰기와 기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디 더 많은 분들이 감사쓰기를 통해 행복한 기적들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기회를 마련해주신 감사나눔 신문사와 교정당국에 감사말씀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감사를 쓰고 계신 수용자 여러분들께도 한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어떤 이유건 괜찮습니다. 일단 감사쓰기를 시작해 보세요. 주위 신경 쓰지 말고 용기 내 보세요. 나와 가족에게 분명히 변화가 찾아옵니다. 그 변화의 끝엔 희망과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장담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10월 10일
서울남부교도소 수용자 000 드림

<이 편지를 보내주신 수용자는 감사나눔연구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소중한 글입니다.
"좋아요" 이모티콘 또는 1감사 댓글 달기
칭찬.지지.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