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교도관 생활에의 회고

아동을 강간한 조두순의 악행을 비롯, 최근 백주 대낮에 귀가하는 여성에 대한 성폭행 시도사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못된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70년대 말에도 교도소에는 집단윤간 등 악질적인 성범죄자들이 왕왕 입소하곤 했었다. 교정시설에서는 이런 자들을 일컬어 이른바 ‘물총강도’라고 이름 했었는데, 대부분이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인 녀석들의 소행인지라 괘씸하기 짝이 없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생 비지땀을 흥건히 흘릴 ‘영혼의 샤워’를 경험하게 해주곤 했었다. 

타인의 정조를 강탈한 이른바 ‘물총강도’들만이 치루어야 하는 식겁할 의식이었던 셈이다.
신체검사 시 하의를 내린 채 일렬로 서게 하고는 벌겋게 달구어진 연탄집게를 들고 다가서면 아무 말이 없었음에도 벌써들 혼비백산하여 두 손으로 주요부위를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강간을 한 물총강도들에게는 성기에 낙인을 하는 것이 교도소의 오래된 관행이라고 일러 주고 는 순번대로 앞으로 나올 것을 지시하면, 이미 모두들 넋이 나간 듯 널부러져 통곡하며 용서를 빌어 왔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개전의 정이 보여 특별히 훈방한다는 말이 떨어지면 마치 죽었다 다시 살아난 듯 감사해 하곤 했었다. 지금과는 모든 게 다른 시절이라 가능했던 객기였고, 또한 그들의 악행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을 피해자들을 위해, 사후적 이나마 어쩌면 내 나름의 ‘착한 사마리아인’을 가슴에 품었었던 탓인지도 몰랐다.
2002년 국방대학교 안보과정 재학 중 동기생들과 독일 함부르크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었다. 그러나 함부르크 해안의 그 넓고 푸른 전경보다도 우리를 더욱 놀라게 했던 것은 광대한 규모와 역할로 존재하는 공창시스템이었다. 함부르크시 세수의 50%가 여기에서 얻어지고 성범죄 및 성병 예방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일응 고개가 끄덕여도 졌었다.

그러나 거리의 가운데에 위치한 공창 설립자의 거대한 동상이며 도처에 즐비한 성인용품가게, 그리고 그 문화를 부담 없이 허용하고 즐기는 함부르크의 특이한 풍경과 정서가 우리에게 주는 문화충격은 실로 적지 아니했었다.
이후 2004년 9월 23일부로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었을 때, 교정 관계자들은 그 취지를 충분히 납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찝찝한 예감들을 공유했었다. “세상의 혼란은, 바보는 수도꼭지처럼 확신에 차 있고 지식인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데서 온다”고 한 철학자 ‘러셀’의 언급이 문득 떠올랐었다. 

도시의 곳곳으로 스며들어 기생하게 마련일, 성급한(?) 집창촌 근절에 따를 애욕의 풍선효과를 과연 감당해 낼 수는 있을 것인지 사뭇 걱정스럽기만 했다.
부는 상층에 축적되고 아픔은 하층에 축적된다고, 접근의 은밀성 및 가격상승 등에 따라 성시장(?)에서 추방된 늙고 또 얇은 지갑들이, 자칫 만만한 아이들에 대한 성범죄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함은 불문가지일 듯싶었고, 아울러 유흥 종사자들에 대한 보건소 등의 정기적인 성병관리 체계가 무너짐에 따라 성병의 확산은 삽시간일 터, 교정시설 입소자의 성병 검진 및 관리대책도 서둘러야 할 듯 싶었다.

성매매특별법시행 이후 모여성장관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피임 기구들이 많으니 집창촌을 찾지 말고 연애를 하라고 젊은이를 부추기는 같잖은 추태를 보이기도 했으나, 그러나 홀로 되고 가난한 중, 노년층에게는 그것조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나 들려졌을 것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교정관계모임에서 토의하던 중 노인복지를 위해 활동하는 모여성위원은 성매매특별법을 노인보호 차원에서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었으니, “파고다 공원의 홀로된 가난한 노인 수백 명을 60대 할머니 3명이 담당하고 있다. 이 불결한 매매춘으로 노인성병이 급증하고 있다” 하고 침을 튀겼었다.

그랬다. 우리의 걱정들은 기우에 그치지 않고 빠르게 현실로 다가들었었다. 고령자들에 의한 아동 성폭행 사건이 다발하여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고, 근절되다시피 했던 교도소 재소자의 매독 등 악성 성병 보균율은 날로 급증해 왔다. 더욱이 집창촌 풍선의 바람은 한 줌도 빼지 못한 채 사회 곳곳에 유사 성매매 업체만 확산되니, 도덕의 이름으로 포장된 카타르시스ㅡ이른바 성매매특별법의 후유증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홍등가의 여성이 양가집 규수를 보호한다”는 옛말을 논거로 들어 독일처럼 공창을 허용하자고 주창할 용기는 없다. 그러나 그 제도가 우발적 성충동에 따른 범죄의 발생을 감소시킨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는 없겠다.
돌이켜보면, 유사 이래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매매춘을 단속하고자 매일의 낮과 밤을 얼마나 많은 경찰들이 수고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단속을 피해 숨바꼭질하고 있다. 

어쩌면 매매춘을 단속하는 그 인력으로, 다른 이의 몸과 마음에 동의 없이 상처를 주는 성범죄자들을 일망타진 하는 데 진력함이 오히려 가치 있는 땀 흘림일 듯 싶다. 
혹여 엉뚱한 곳에 엄숙함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겠다. 최선의 사회정책이 곧 최선의 형사정책임을 상기하면서.

이태희 (전 교정본부장/현 사단법인 대한민국 재향 교정동우회 회장)

소중한 글입니다.
"좋아요" 이모티콘 또는 1감사 댓글 달기
칭찬.지지.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