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언의 마음산책

/어때? 이 정도면 괜찮은 건가?/ /지금 딱 좋은데. 가을 남자 분위기도 느껴지고, 적당히 중후해 보여서 좋아. 난 너무 짧은 것보다 조금 긴 머리가 좋던데./ /그래? 아니야, 아무리 봐도 좀 지저분해 보여. 그리고 오늘 아니면 다음 주에는 시간을 낼 수 없을 텐데. 에이, 오늘 다녀와야겠다./ /당신 좋을 대로 하셔요./ /지금 다녀올게./

2주 간격으로 녹음기를 켠 듯 매번 반복되는 대화다. 대화의 주제는 다름 아닌 머리 길이에 대한 것이다. 난 1달에 2번, 대략 2주 간격으로 미용실에 간다. 경조사나 특별한 약속이 생겼을 땐 1주일 만에 가기도 한다.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이나 겨울철에는 좀 더 머리를 기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머리를 자르고 1주일 정도 지나면 삐죽삐죽 드러나는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거울을 볼 때마다 고민하다가 결국 며칠을 더 버티지 못하고 미용실을 찾곤 한다. 빠르면 열흘, 늦어도 2주를 넘기지 못하고 미용실을 찾아가는 것이다.

미용실에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지저분해 보이는 머리카락이 시원스럽게 잘려나가고 금세 깔끔해지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머리를 자르기 전부터 뭔가 경건해지는 듯한 분위기가 좋다. 
의자에 앉고 목에 하얀 천을 두르는 순간부터 숙연해지고, 미용사의 손끝이 움직이고 머리카락이 잘려나갈 때마다 왠지 모르게 고마운 마음이 점점 커져만 간다. 머리를 자른 후 샴푸 서비스를 받을 때 그 고마움은 절정에 달한다. 그 순간은 마치 왕처럼 최고의 서비스를 받는 느낌이다. 어린 시절 머리를 감겨주시던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지기도 해서 마음도 푸근해진다. 아주 특별한 존중과 특급 대우를 받는 기분이다. 

20여 년째 내 머리 손질을 해주고 있는 미용실 원장에게 언젠가는 내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원장님은 사후세계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어요./ /왜요?/ /하루에도 수십 명씩 이렇게 머리를 깎아주고 정성스럽게 감겨주기까지 하잖아요. 천국으로 가는 열차가 있다면 아마도 미용사들이 1순위로 탑승할 것 같은데요./ /아유, 돈 받고 하는 당연한 서비스인데요, 뭘./ /그래도 누군가의 머리를 깎아주고 감겨준다는 건 상당히 의미 있고 숭고한 일인 것 같아요./ /그런가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기분도 좋고 정말 제가 뭔가 숭고한 일을 행하는 중요한 사람이 된 같네요./

미용사 말고도 숭고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주는 세신사도 있고, 환자들의 몸을 직접 만져주는 물리치료사나 마사지사도 있다. 그들에겐 그것이 직업이기에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서비스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감동적인 체험이 되기도 한다. 
고맙고 감동적인 체험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그렇게 마음이 따뜻해지면 누군가에게 그 온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고마움이 선행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상쾌한 기분으로 미용실을 나서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오늘 날씨도 좋은데 외식할까? 식사 후에 가까운 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나야 좋지. 얼른 준비할게요./ 
좋은 일은 연이어 좋은 일을 부르고, 감사의 마음은 또 다른 감사를 부른다고 한다. 내가 한 달에 두 번 머리를 깎는 건 단순한 미용을 넘어서 나만의 감사 데이를 치르는 하나의 의식이기도 하다. 바쁜 일상에 쫒겨 나도 모르게 잊고 지냈던 감사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충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2주를 살아낼 에너지를 가득 채우고 씩씩하게 집으로 향한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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