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병영

표면적인 감사는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감사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원적인 감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감사하는 것

“내 곁에 있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자체로 있어 줘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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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때 겪은 실패와 낙담

나는 옛날부터 자신감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관심이 많아서 어릴 때부터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야 하는 조건들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남들보다 공부를 더 잘한다든가, 남들보다 운동을 더 잘한다거나.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들은 내 존재를 좋아한다기보다 내 조건이나 능력을 더 좋아해서 다가온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부모님에게도 이어졌다. 나는 항상 부모님에게 내가 사랑받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하기보다 내가 임의로 판단해서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나를 사랑해 주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와중,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 겪는 큰 실패였고, 많이 낙담했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었지만,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자존감도 많이 떨어져 있고 낙담한 상태였다. 부모님은 나에게 위로도 해주셨지만, 현실적인 조언도 해주셨다. 결과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아서 안타깝지만, 노력을 더 기울였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거라는 말을 해주셨다. 하지만 그 말은 나에게 너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말로 들렸다.

내 존재 자체에 감사한 어머니

자존감이 떨어지고 부정적인 생각을 계속해서 하고 있을 때 부모님을 따라 새벽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갔던 적이 있다. 평상시 나는 새벽예배를 드리러 가지 않아서 새벽예배 때 어머니가 어떤 기도를 하시는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낮에 드리는 예배는 사람들이 많아서 기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데 새벽에 드리는 예배는 사람이 몇 없어서 사람들이 기도하는 소리가 잘 들린다. 그래서인지 그날따라 어머니가 하시는 기도가 내 귀에 들렸다.

어머니는 내 기도를 하고 계셨다. 부정적으로 변하고 자존감이 떨어진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셨다. 동시에 내 존재에게 감사하고 계셨다. 아들이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감사하고,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기회가 있다는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계셨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어머니는 나의 존재, 그 자체에 감사하고 계셨다. 내가 건강하지 않아도, 내가 똑똑하지 않아도, 내가 부지런하지 않아도 그 자체에 감사하고 계셨다. 어머니가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어머니가 앞에서 기도하시는 동안 뒤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내가 생각했던 것이 부끄럽고 나에게 감사할 줄 아시는 분이 내 어머니라는 것에 정말 감사했다. 이후로 나 또한 부모님 그 자체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게 되었다.

100감사가 갖는 의미

나는 감사를 느끼는 측면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표면적인 감사를 느끼는 것, 그리고 근원적인 감사를 느끼는 것. 표면적인 감사는 흔히 우리가 감사하는 것에 해당한다.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감사인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와 같은 감사가 이에 해당한다. 그와 달리 근원적인 감사는 우리가 전혀 생각하면서 살지 못하는 감사이다. “내 곁에 있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자체로 있어 줘서 감사합니다”와 같은 감사가 이에 해당한다.

표면적인 감사는 표현하기 쉽다.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감사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원적인 감사는 평상시 하기 힘들다. 나와 항상 같이 있는 사람이 어느 순간 없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평상시 우리는 근원적 감사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나의 사례로 보자면 나의 어머니는 나에 대한 표면적인 감사도 당연히 하셨지만, 나에 대한 근원적인 감사도 하고 계셨다. 근원적으로 내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들. 내가 어떠한 사람이라도 내 자체를 인정해주고 감사하는 것. 그 감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감사가 아니다. 100감사는 하루 만에 적을 수 없다. 수없이 고민하고 고쳐가며 적는 오랜 시간의 생각 중에 근원적인 감사가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근원적인 감사는 그 모습 그대로 감사할 줄 아는 감사를 말한다. 마치 부모님이 나를 아들로서 나의 모습 그대로를 감사하고 고마워 해주셨던 것처럼, 우리는 그 모습 그대로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유명한 화가 앙리 마티스는 이런 말을 했다. “꽃을 보기 원하는 자들에게 꽃은 이미 존재한다.” 감사는 우리가 찾아보기 전에 이미 존재한다. 다만 이를 발견하려고 해야 그 감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100감사는 이를 발견할 좋은 기회이다. 우리가 감사할 것이 없다 하더라도 감사할 이유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감사 받아야 할 존재들

100감사 운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감사할 대상이 누군지, 감사할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근원적 감사까지 생각하게 끌어낸다. 나 또한 이 과정을 100감사를 작성하면서 느꼈다. 내가 부모님에게 감사할 이유를 생각할 때 감사할 이유가 있어서 감사한 것도 있지만, 감사해야 할 것이 없어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평상시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여러 측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흔히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을 한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결국 상대방이 존재로서 내 옆에 있어 줄 때를 감사하고 잘 대해주라는 말일 것이다. 이 말은 우리 모두 근원적 감사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실천은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우리 모습 그대로에 감사하면 우리 모두 감사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감사 받아야 할 존재들이다. 당당히 전우 곁에 존재해준다는 것으로도 감사받아야 하고, 가족들에게 건장한 청년으로서 자랑스럽게 군 복무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감사받아야 한다.

글=정하헌 이병(22사단)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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