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건강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지난 25년 내내 우울증 환자였다. 어떤 날은 머릿속에 음침하고 부정적인 모래 진창이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진다. 또 어떤 날은 짙은 먹구름이 겹겹이 피어나 내 생각을 짓누르고 의욕을 빼앗아가는 것만 같다. 우울증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든 나는 움직이기가 어려워지고, 실내에 처박혀 이불을 뒤집어쓰고 넷플릭스를 보고 싶은 마음만 간절해진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면 우울함이 조금이나마 걷히리라는 것, 밖으로 나가 오두막집 뒤의 숲을 거닐면 어두운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더라도 분명 옆으로 비켜나리라는 것은 안다.”

영국의 박물학자이자 디자이너이자 창작자인 에마 미첼이 쓴 <야생의 위로> 머리말에 나오는 글이다.

우울증을 겪어 보았거나 현재 겪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내용이다. 우울증은 무엇이고 왜 걸리고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까? 서울아산병원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을 보자.

우울증은 생각의 내용, 사고 과정, 동기, 의욕, 관심, 행동, 수면, 신체 활동 등 전반적인 정신 기능이 지속적으로 저하되어 일상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의미하고,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정신 질환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생화학적, 유전적, 환경적 요인이 우울증을 일으킨다고 하는데, 여기서 생화학적 요인만 보자.

“생화학적 요인 : 뇌 안에 있는 신경전달물질(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GABA 등)과 호르몬(갑상선, 성장 호르몬,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피질 축) 이상, 생체 리듬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몸에 이상이 생긴 만큼 정신치료 말고 약물치료가 있다. 즉 뇌에서 기분에 관련된 신경전달물질들의 불균형을 조절하여 우울증을 완화시키는 항우울제가 처방된다는 것이다.

약은 자연의 원재료를 가지고 만든 인공 물질이다. 즉 물질로 아픈 몸을 치료하는 것인데, 약을 투여하지 않고 숲을 걷는 것만으로도 그 효과를 볼 수가 있다.

<야생의 위로>를 보자.

“세로토닌 분비는 산림욕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더욱 많은 증거를 보여준다. 세로토닌은 뇌 신경세포 간의 신호를 전달하는 화합물인데 우울증 환자의 경우 이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감소한다. 세로토닌 분비 변화가 기분 저하의 이유인지 결과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고, 그 밖에도 여러 뇌 내의 메커니즘이 기분 조절에 관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세로토닌과 인간의 기분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며 자연과의 접촉이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한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항우울제 복용을 통해 세로토닌 증가를 하지 않고 이처럼 숲을 걷는 것만으로도 세로토닌이 증가된다는 것, 그건 식물이 내뿜는 피톤치드와도 관련이 있다. 피톤치드는 ‘식물’이라는 뜻의 ‘phyton’과 ‘죽이다’라는 뜻의 ‘cide’ 합성어로 식물에 해로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감염을 막아주는 휘발성 화합물과 기름을 통칭해 부른다. 식물이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내뿜는 피톤치드를 인간이 흡입하면 면역계와 내분비계, 순환계와 신경계에 같은 작용을 한다. 즉 인간에 기생하는 병원체의 활동을 억제하고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데 이 과정에서 우울증을 날릴 수 있는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들이 우리 안에서 생성된다는 것이다. 어떤가, 이만큼 좋은 자연 치료가 어디 있을까?

<야생의 위로>를 보자. “3월 중순부터 내 머릿속에서 펼쳐진 사태를 설명하기에 ‘자살 사고’는 너무 온건한 의료 용어처럼 들린다. 그것은 병증의 중력이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완강해지는 경계선, 즉 우울증의 블랙홀이다.”

미첼은 차를 몰고 도로로 나가 자살 지점을 찾는다. 바로 그때 도로 중앙분리대에서 자라나는 조그만 묘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눈앞을 스치는 푸른 잎사귀와 엔진의 규칙적인 진동이 내면의 참담한 소음을 가라앉힌다. 나무들을 통해 미첼은 위기를 벗어난다.

미첼은 말한다. 정원을 산책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자연의 약상자에 손을 집어넣는 것과 같다고. 그럼 세로토닌, 도파민, 엔도르핀 분비가 촉진된다. 우울증, 단번에 치료할 수 없지만, 숲을 걷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얻을 것이다. 그러니 걷고 또 걷자.

김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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