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제국 로마에서 배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당시의 순도 100%의 은화 데나리우스(denarius), 자료=wikipedia
아우구스투스 황제 당시의 순도 100%의 은화 데나리우스(denarius), 자료=wikipedia

 

“안보와 경제”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쌍두마차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동방과 서방을 재편하여 안보를 튼튼히 하면서 동시에 경제 문제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다. 로마 역사에서 중시되어 온 정치인의 경제관에 주목했다. 

“경제인이라면 정치를 이해하지 못해도 성공할 수 있지만, 정치인은 경제를 몰라서는 안 된다.”

로마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 진리를 알았기에 로마가 지중해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이 진리를 실감나게 실천한 지도자가 바로 아우구스투스 황제다. 그는 경제 마인드를 가지고 '화폐 개혁', '세제 개혁', '식량 안보' 등을 해결해나갔다.  

아우구스투스는 화폐 개혁을 단행하여 ‘기축통화(key currency)’ 체제를 구축했다. 로마의 화폐는 은화와 동전이 있었다. 금화는 개선식이나 특별한 날에 기념으로 만들어졌을 뿐 통화로 활용되지는 않았다. 

아우구스투스는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축통화를 만들어 제국 전체에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화폐 제도 개혁을 단행했다. 은화 '데나리우스(denarius)'는 순도 100%를 유지하여 은본위제도를 실시했다. 이 개혁의 성과는 서기 4세기까지 300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지폐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 로마의 통화가 기축통화로 300년 동안 로마제국을 지탱했다는 사실은 경제적으로도 ‘팍스 로마나’가 실현되었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그 시작이 바로 아우구스투스 시대였다. 

통화가 경제 문제라면 식량은 경제 문제이면서 정치 문제였다.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은 정치의 중요한 과제였다. 로마는 '1차 포에니전쟁(기원전 264-241)'이 끝난 후부터 200년 동안 식량의 자급자족 정책을 포기했다. 그 전쟁에서 로마는 밀의 생산지인 시칠리아 섬의 영유권을 카르타고로부터 확보했기 때문이다.

카르타고의 높은 밀 생산성으로 인해 본국 이탈리아의 밀 생산은 경쟁력을 잃고 쇠퇴했다. 시칠리아 섬이 밀의 주요 공급처가 된 것이다. 대신에 본국 이탈리아의 농업은 올리브유와 포도주 재배 등으로 방향을 틀었다. ‘비교우위 경제 이론’을 터득하고 대처한 것이다. 

식량 확보는 공화정시대에 관리관이 담당했다. 하지만 식량 확보가 어려워지고 심각한 상황이 닥치면 젊은 관리관이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영향력 있는 인사를 일시적으로 임명하여 식량 위기를 돌파하곤 했다. 

 

식량청 장관직 신설과  '출산 장려' 정책 실시

서기 6년 경 심각한 식량 위기가 닥치자, 아우구스투스는 지체없이 '식량청 장관'이란 관직을 만들어 식량 자급 문제를 원로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해결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혁했다. 이 자리는 정치적인 직위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원로원 의원' 중에서 선택 하지 않고 '기사 계급'을 임명했다. 이 관직도 황제재무관과 마찬가지로 황제가 임명하는 자리가 되었다. 1년 임기가 아니라 5년 또는 10년을 지속하면서 식량 자급 문제에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처하도록 조치했다. 이로써 식량 안보 역시 황제의 권한이 되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정치, 행정, 군사, 선거, 안보, 경제 분야 등에서 개혁을 이루었다. 그 밖에 국세 조사도 재위 기간 동안 3차례나 실시해서 기원전 28년, 기원전 8년, 서기 14년에 이루어졌다. 기원전 28년의 조사는 42년 만에 실시되었는데, 17세 이상 성인 남자 시민권자의 수가 42년 전에는 90만 명에 불과하였으나 406만 명으로 늘어났다. 서기 14년에는 493만 7천 명으로 증가되었다. 

또한 당시에 여유 있는 계층에서 독신과 자녀를 적게 낳으려는 풍조가 확산되는 현상에 대한 대책으로 아우구스투스는 두 가지 법안을 제출했다. ‘간통 및 혼외 정사에 관한 율리우스 법’‘정식 혼인에 관한 율리우스 법’이다. 간통죄가 제정됨으로써 간통은 공적인 범죄가 되었다. 

정식 혼인법은 로마 사회의 중류층과 상류층을 대상으로 '출산 장려'를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25세부터 60세 까지의 남자와 20세부터 50세까지의 여자는 결혼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받았다.  출산 장려 정책은 해방노예에게도 적용되었다.

로마의 정치인들이 가진 경제관이 천년 제국을 가능하게 했다. “경제인이라면 정치를 이해하지 못해도 성공할 수 있지만, 정치인은 경제를 몰라서는 안 된다.” 경제를 중시하는 정치인의 자세는 오늘날에도 빌 클린턴 대통령이 말했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It's the economy, stupid!)"라는 말로 다가온다. 

양병무 기자

감사나눔연구원 양병무 원장.
감사나눔연구원 양병무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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