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교도관 생활에의 회고

2010년 2월 23일 “천안 외국인전담교도소”가 드디어 문을 열었다. 세계의 교정사에 전무후무한, 인본주의적 행형 확장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이었으니 과연 자랑할 만했다. 
그러하다 보니 개청식 또한 전에 없이 성황을 이루었다. 법무부 장관을 필두로 지역 국회의원, 천안시장 등 국내 인사들은 물론, 필리핀 대사 등 19개국의 주한외교 사절들 까지 참석하였다.

“외국인 수형자의 인권 개선은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외국 교정 시설에 있는 한국인 수형자의 인권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법무부 장관의 기념사를 들으며 우리가 이루어 낸 성취에 감개무량해 하자니, 여지없이 떠오르는 얼굴 하나가 있어 가슴에 애잔함이 출렁였다. 어쩜 찾아주기를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 만남을 반가워했던 먼 나라 감옥의 그 청년이었다. 
기억은 아픔이 남긴 흔적이라는 말이 맞았다.

재직 중 아시아. 태평양 교정본부장회의 등 외국 출장의 기회가 틈틈이 있었고 그때마다 외국의 교정시설을 참관하곤 했으나 한국인 수형자를 마주친 경우는 전혀 없었는데, 딱 한 번 모국가의 교정시설 참관 중 한국인 수형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서는 일부러 불러 만나게 되었었다. 20대 후반의 그 청년은 갑자기 나타난 한국인을 보고서는 반가워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했다. 

더욱이 홀로 떨어진 외국의 감옥에서 문득 마주한 동포가 한국의 교정본부장임을 알고서는 뚫어져라 나를 응시하는 그 절절한 눈빛이 얼마나 많은 말을 담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지닌 억압과 소외 그리고 외로움을 한 번의 눈 맞춤으로도 익히 읽어낼 수 있었다. 
마약소지 등의 범죄로 복역하고 있는 그를 등 두드려 격려하고 돌아서는데 마음을 밀고 드는 씁쓸함이 적지 않았었다.

어쩌면 그 한 번의 만남이 오래도록 잊혀 지지 않는 애틋한 서사로 가슴 한 켠에 남아 있었던 탓인지도 몰랐다. 소년수형자의 인원이 급격히 감소하여 천안과 김천 두 곳에 나뉘어 있던 소년교도소를 한 곳으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모였을 때, 우리나라에서나마 외국인만 을 집금, 처우하는 시설 하나 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천안의 소년수형자들을 김천으로 같이 모으고, 천안의 시설을 외국인 전담교도소로 그 기능을 전환하는 안을 만들어 장관한테 보고했다. 

법무부 장관은 뜻밖의 보고를 받고서는 다른 나라에도 그런 형태의 처우시설이 있는가를 물어왔으나, 다른 나라에는 전혀 없는 시설이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값어치를 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진언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나의 제안을 허락해 주었다.
그리하여 외국인 수형자의 현황파악과 처우시설의 보완 등 시설의 기능전환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었었다. 
그 결과 2010년 2월 현재 전국 교정시설에 수용된 42개국 1500명의 외국인 수형자 중, 개방
적 처우에 적합한 27개국 590명을 일차적으로 선별하여 외국인 전담교도소에 수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전담교도소를 여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아 거기에 흘린 땀과 노력이 적지 않았다. 세상의 다른 쪽에 있는 문화의 다양성으로 하여 필연적으로 초래될 수형자 간의 갈등 요소를 감안, 종교별 및 국적별로 최대한 분리수용토록 하였고, 외국인 수형자에 관한 각국 대사관과의 업무 협조를 위해 ‘국제협력과’를 신설함은 물론, 처우의 적정을 담보하고자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베트남어, 몽골어 등 다수의 외국어 능통자들을 교도관으로 특채하여 배치하였다.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체험실, 도서실, 시청각실 등이 준비된 ‘다문화센터’도 시설 내에 만들어 서예, 서화, 풍물, 등의 특별활동을 배려하였다. 10개월 과정의 한글교육반도 편성. 운영토록 하고, 단국대학교와 관학협정을 맺어 ‘굿모닝 코리아’ 강좌 등을 개설, 한국에서의 수형생활 적응을 지원토록 했다. 
거기에 더해 출신국의 음식 문화를 배려하여 두 가지 식단의 식사가 제공되고, 외국어도서 5,600여권을 비치함과 더불어 자국의 위성방송도 시청할 수 있도록 했으며, 가정의 달과 연말연시에는 자국에 있는 가족과 무료로 국제전화를 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그러나 또한 ‘인간의 삶이란 게 얼마나 부서지기 쉬우며 사악함에 열려 있는지’를 아는 터라, 교정사고 발발 요인의 차단 등 계호력의 적정한 운용에도 결코 소홀함이 없도록 조치, 강조해 두었었다.
돌이켜 보건데, 천안 외국인전담교도소는 그야말로 한국교정행정의 수준을 한 차례 업그레이드시킨, 다이내믹한 우리 행형의 종결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었다. 어쩌면 우연히 외국교도소에서 마주친, 굴곡진 삶의 무거움과 회한이 가득 고인 한 사람 인생의 눈망울이 내 생각의 범주를 키우고, 평소에 보이지 않던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이 도전이 가능 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시도하지도 않았던 일을 하고 난 스스로의 의지와 수고에 가슴이 뿌듯해져 왔다. ‘자아도취가 스스로에게 하는 아부라면 오늘은 그 아부로 내 삶을 기꺼워하고 싶다.’ 는 말에 손쉽게 동의했다. 가보지 않은 길의 선택과 부담일랑 내 임기의 치부책에 올려 두고.

이태희 (전 교정본부장/현 사단법인 대한민국 재향 교정동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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