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침과 뜸으로 승부한다

병명도 알았고 고칠 방법까지 알았다며 좋아하면서 진료실 문턱을 넘던 J씨가 갑자기 되돌아와 물었다. "그런데 제 친구는, 병원에서는 왜 못 알아낸 겁니까? 선생님은 단박에 알아 차렸는데."
J씨의 말대로 병원에서는 중풍이 한 번 지나간 것을 알지 못했다. 최신식 첨단 장비로 몸속을 샅샅이 헤쳐보고도 J씨의 두통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고 한 차례 쓸고 간 중풍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반면 나는 한순간에 J씨의 병을 보았다. 최신 진단 장비가 아닌 술자의 감각으로 나는 병을 찾아냈다. 제 아무리 첨단 기계라 해도 인간에게는 기계가 흉내 내지도 따라오지도 못하는 구석이 있다.
나는 중풍을 한번 가볍게 맞은 사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중풍은 몸의 반(半)이 고장 나는 병이다. 그래서 한 번 가볍게 왔다하더라도 중풍을 맞은 사람은 반드시 어느 한 쪽이 무력해지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주의 깊게 살펴보면 아주 조그만 차이라 해도 알 수 있다. 이마의 주름살 한 쪽이 더 쳐 져 있을 수도 있고 눈 한쪽이 약간 덜 감기거나 조금 덜 떠질 수도 있다. 
말을 하거나 음식을 씹을 때 입이 미세하게 한 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고 얼굴이나 몸 한 쪽의 감각이 다른 쪽에 비해 무디거나 힘이 없게 느껴 질 수도 있다.
의심은 가지만 확실하지는 않다면 혀를 입 밖으로 빼 보게 하면 된다. 중풍을 맞은 사람은 혀가 한쪽으로 쏠리게 되어 있다.

병원에서 갖은 검사를 해도 알아내지 못한 병을 단 번에 알아내는 까닭에 사람들은 내가 특별한 능력이나 가진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이런 능력은 훈련만 열심히 하면 누구나 터득할 수 있다. 
그저 환자를 바라보고, 듣고 냄새 맡으며, 물어보고,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병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 몸이 구석구석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평생을 환자를 보고 환자의 몸과 안색을 살피며 살아온 내 눈에는 사람들의 병이 보인다. 
나는 길거리를 가도 지나치는 사람들 속에서 병을 본다. 얼굴에 푸른빛이 도는 저 사람은 간에 탈이 났겠구나. 얼굴이 불그스레한 저 이는 심장에 탈이 있는 게로구나. 
어깨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숨을 쉬니 천식이 오래 되었고, 손등에 엄지와 검지사이의 살이 쑥 들어간 걸 보니 목뼈를 심하게 다쳐서 고생을 하고 있구나. 
등 뼈 맨 위 부위에 살이 많고 툭 튀어나온 저 사람은 중풍이 올 확률이 높으니 조심해야 할 텐데.

<구당 김남수 옹의 책 ‘나는 침과 뜸으로 승부한다’에서 발췌>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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