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언의 마음산책

아마도 2019년 9월 초로 기억된다.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미묘한 계절의 경계에서 그를 만났다. 그에게서는 가을바람의 선선함보다 아직 여름 태양의 열기가 남아 있었다. 그런 첫인상과 달리 그가 ‘감사 나눔’을 이야기할 땐 뭔지 모를 청량감 같은 게 느껴졌다. 순수한 열정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튼, 그날 나는 그에게 예정에 없던 칼럼 연재를 약속하고 말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영환 대표와의 만남이자, <감사나눔신문>과의 만남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엔 1년 정도 연재하면 되겠거니 했던 것이 어느새 만 4년을 채웠고, 어느덧 100번째 원고를 쓰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치고 힘들 때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리만치 그때마다 그가 전화를 걸어와서는 “작가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를 연발했다. 조금은 식상하고, 때로는 진정성이 안 느껴지고 기계음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그 말이 적잖이 힘이 되고 위안이 되어 주었다. 
이런 게 말의 힘, 감사의 힘이 아니었을까? 참 신기한 체험이었다. 

그리고 매회 원고의 한 구절을 언급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편집국장님의 문자 또한 100회까지 지속할 힘이 되어 주었다. 두 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감사나눔신문>을 알게 되고 칼럼을 연재할 수 있게 된 건 나에게 큰 선물이었고 행운이었다. 그 당시 나는 힘든 시기를 버텨내고 있었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읜 지 6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밑도 끝도 없는 상실감과 우울감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 위태로운 삶의 경계에서 다시 긴장의 끈을 잡아당기고 마음을 추스르게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원고 마감이었다. 2주마다 돌아오는 원고 마감일은 1주일 전부터 온 신경을 팽팽하게 당겨주었고,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 순간부터 찬찬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했고, 자연스럽게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랬다. 칼럼 원고를 쓰는 일은 누군가를 위한 일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일이었다. 스스로 마음을 어루만지고 토닥여주는 위로와 격려의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내 자신이 마냥 안쓰러워만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기특하고 대견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량했던 마음에 감사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잘 버텨준 내게 고마웠고, 그런 삶에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들과 주변 환경에 감사했다. 
그리고 내 안에서, 내 삶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감사를 발견하게 해준 <감사나눔신문>과의 인연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감사하면 자꾸 감사할 일이 생긴다.‘고 했다. 최소 2주에 1번, 원고 마감 때문에라도 감사한 일들을 찾다 보니 감사한 일들을 연이어 발견하게 된다.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소소한 일상 을 걸음을 멈추고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감사의 순간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연재의 횟수만큼 반복된 그 행위가 어느 순간 습관처럼 자리를 잡았다. 
4년이란 시간, 100회라는 반복된 행위는 좋은 습관 하나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가 <감사나눔신문>을 위해 무언가를 한 것이 아니라 <감사나눔신문>이 내 삶에 커다란 선물 하나를 안겨준 셈이다. 

그렇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쓴 내 일상의 기록들은 또 하나의 선물이 되어 보석처럼 남아 있다. 기회가 된다면 한 권의 책으로 엮어볼 생각이다.
100회 원고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친다. 졸작이지만 그동안 내 글을 읽어준 독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 가지 일에 마침표를 찍는 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또 다른 출발점이 되어주기도 한다. 잠시 펜을 내려놓고 ’마음 충전‘의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분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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