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교도관 생활에의 회고

무릇 자유형 (징역. 금고. 구류)이란 범죄인을 사회로부터 격리하여 그 자유를 박탈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형벌이다. 고대 및 중세에는 사형 및 신체형이 형벌의 대종을 이루었으나 근세에 이르러 자유형이 사형 및 재산형 등을 뒤로하고 형벌체계 중 가장 중요한 지위를 자리하기에 이르렀고, 현대의 형벌제도 또한 자유형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자유형이 단지 고통과 해악으로 치부. 점철되던 응보형주의의 너울을 벗어 던진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자유형은 목적형 내지 교육형주의의 입장에서, 이른바 범죄인의 교화와 개선을 표방하며 집행되고 있다. 자유형의 지향점이 범죄인의 교정. 교화를 통한 사회복귀에 있음을 천명함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근래 강간살인범 등 강력범죄가 전에 없이 빈발하여 사회일반의 불안심리 및 분노가 일시에 증폭되고 보니, 이에 대응하여 법무부등 관계부처에서는 ‘가석방 없는 무기형’의 도입을 검토하겠노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형이 품고 있는 이념과는 상치되는 방안이라 실제의 행형에는 전혀 가당치 않다. 자유형이 범죄인에 대한 사회적 격리작용임을 부인할 수 없듯이, 또한 필연적으로 그에 수반되는, 개선. 교화를 통한 사회복귀 촉진이라는 현대적 자유형의 방향과 형사정책적 의의 또한 부인될 수 없다. 희망이 거세된 형벌을 두고 결코 자유형이라 칭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선진 외국에서 강력범에 대한 대책으로 이른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시행하였다가, 하나같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사면을 통해 출소시키는 상대적 종신형으로 바꾸게 되었음은, 우리 범죄대책의 오류를 명증해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극악무도한 범죄를 행한 자에 대해, 다시는 이 사회를 발디딤할 수 없는 응보적 등가성을 지닌 형벌을 굳이 찾자면 그것은 다름 아닌 사형이다. 사형이란 형벌의 무게란 집행의 유무를 불문하고 실로 무겁다.

그 무게만큼 미집행 사형조차도 사형수의 내면에 기능하는 형벌적 굴레와 응보적 징치는 의미롭다. 사형제도를 존치해 두는 한, 그 집행을 미루며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라고 수 십 년을 노래 부른들, 사형수가 맞이하는 매일의 새벽은 언제나 두렵다. 더러 사는 것이 지겨운 양, 난동 등 말썽을 부리는 녀석들도 있으나 그 조차 사람 봐가며 까불었고, 그런 작자일수록 오히려 더욱 새벽을 두려워한다.

혹여 어느 정권에서 빚잔치라도 하듯 미루어 둔 형벌의 올가미를 일시에 당기고 말 것인지 두렵고,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다 사형집행을 하는데 생뚱맞게 한국만이 빠져 있는 게 또 이상해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어느 날 문득 면회가 왔다는 말이 두렵기도 하고, 새벽녘 복도를 울리는 교도관의 발자국 소리에 소스라쳐 몸을 사리고 두 손을 모으기도 한다. 
손을 모은 그 마음으로 제발 더는 세상에 흉폭하고 잔인한 범죄는 발생하지 않기를, 그로하여 세상이 자신들을 기억하고 되돌아보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기적일 따름이지 그 바램의 진정성이야 형사학자 못지않을 터이고.

그러나 오늘날 이렇듯 강력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아니함이 영향을 미친 탓인지, 용서 못할 흉폭한 범죄에 이르기 까지도 웬만해서는 사형을 선고하지 아니함에 익숙해져 버린 듯한 법관들의 양태가 지나치다. 
집행도 되지 않는 사형을 괜스레 심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선고하지 아니하려는 그 입장을 일응 수긍하더라도, 그러나 잔혹한 범죄의 희생자 가족들이 그 때문에 흘리는 피눈물에는 답을 줄 수 없으니 아쉬움은 늘 피해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법 이전에 마음의 칼로 수도 없이 처단하고 또 처단했던 범죄들이었기 때문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고대의 사적 복수 시대를 벗어나 오늘날 범죄의 응징을 국가가 위임받은 공형벌 시대에, 범죄에 대처하는 국가 형벌의 강도가 그 등가성을 훼손할 경우, 형벌의 일반 예방적 위하력 실추와 법질서의 이완을 불러오기 십상이다. 
거기에 더해 공형벌 체계에 대한 불신의 누적은 극단적인 경우 사적 복수심을 조장하기에 이르기도 한다.
목숨 앞에 경건해야 할 의무가 착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닐 터, 용서 못할 극악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사형을 선고할 것이지, 가석방 없는 무기형 따위 등의, 자유형의 맥락과도 어긋나는 한가한 대응으로 설왕설래할 일은 아닐 상 싶다.

사형집행의 유무에 대한 논란은 뒤로하고서도 사형제도의 존치가 반드시 필요함을 작금의 범죄 실태가 새삼 깨우치게 해 준다. 그 집행을 유예해도, 집행의 의지 표출만으로도 형벌 본래의 위하력은 배가되어 사형수들을 일시에 숨죽이게 함은 물론, 범좌예비군들에게 까지 경각심을 일깨우는 바 크다. 
그런 측면에서 금번 법무부장관의 사형장 점검지시는 시의 적절했다. 
사형장의 청소는 집행 전일이 아니고는 결코 시행하지 않아왔던 교정시설의 오랜 관례와 터부까지 있던 터로 미루어 봐, 이번의 사형장 점검지시는 사형수들로 하여금 갖은 예감으로 긴장하고 고개 떨구게 할 것이다. 신의 한수다.

이태희 (전 교정본부장/현 사단법인 대한민국 재향 교정동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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