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침과 뜸으로 승부한다

병이란 균형이 무너져서 오는 것. 그러므로 균형이 무너지려는 징조나 무너진 흔적은 어딘가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술자는 바로 그 징조나 흔적에서 병을 읽는다. 그런데 환자의 몸이 보여 주는 흔적만큼 중요한 단서가 있으니 바로 환자의 말과 행동이다. 
환자가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과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 가운데에는 병을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들어있을 뿐 아니라 병이 온 과정과 증상이 처음 나타난 시기를 추론할 수 있는 실마리가 들어 있다.

2000년 9월 금산인삼축제 기간 중에 있었던 일이다. 침뜸 무료 진료를 위한 대규모 <뜸사랑> 봉사단이 금산에 도착하자 금산군수와 금산군 보건소장이 감사 인사를 하러 왔다. 금산군수와 보건소장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군수의 병을 알아차렸다. 
“군수님, 다리 아프시지요?"
"아니 그걸 어떻게 ...."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금산군수는 다리를 가만히 두 지 못하고 자꾸 자세를 고쳐 앉았고 의자 팔걸이에 허 리를 비스듬히 기대고 있었다. 허리와 다리가 불편하지 않다면 그럴 리가 없었고 나는 확인을 하기 위해 물어보았을 뿐이다.
나는 환자가 오면 농담을 하면서 긴장을 풀어주려 애 쓴다. 그래야 사소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은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는 까닭이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볼까. 고혈압은 원인을 알아야 완전히 잡을 수 있다. 모든 병이 원인이 중요하지만 고혈압에 있어 원인이 특히 중요한 것은 고혈압은 병이 아니라 증상이라서 그렇다. 고혈압은 오장(五臟)의 이상이 원인이다. 
심장에 이상이 있어 혈압이 높아질 수 도 있고 간의 탈로 혈압이 높아질 수도 있으며 비의 병으로 고혈압이 올 수도 있고 신장의 질환으로 고혈압이 유발될 수도 있다. 다만 폐(肺)의 탈이 나 병으로 고혈압이 유발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람들은 내가 병을 알아내는 비법(秘法)을 가지고 있으면서 털어놓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는데 비법 같은 것은 없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의서(醫書)에 나와 있는 병증(病)을 판단하는 방법을 완전히 내 것이 되게 익힌 바탕 위에 임상 경험이 쌓이면서 남보다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병을 찾아낼 수 있게 된 것뿐이다. 
세상에 왕도란 없다. 좋은 술자가 되는 길에도 왕도는 없다. 만일 있다면 초심을 잃지 않는 마음가짐과, 기본과 원칙을 지키려는 굳은 의지뿐이다.

구당 김남수 옹의 책 ‘나는 침뜸으로 승부한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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