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교도관 생활에의 회고

교정관련 국제 네트워크의 구축 및 선진 교정제도를 지향하고자 태동된 아시아. 태평양지역 교정본부장 회의는, 1980년 2월 25일 홍콩에서 그 1차 회의를 가진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나라를 달리하여 개최되어 왔다. 
우리나라는 1983년 뉴질랜드에서 개최된 제 4차 회의부터 참석해 왔으며, 1986년 제 7차 회의 및 2005년 제 25차 회의를 주관, 서울 쉐라톤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개최한 바 있었다.

내가 교정본부장으로 재임하던 중에는 2008년 말레이시아와 이듬해 호주에서 개최된 두 번의 회의에 각각 참석하였었다. 그런데 호주회의 시 주최 측 교정 당국이,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우리 대표단에게 저지른 실수가 어찌나 황망하였던지, 그때를 돌이켜 보노라면 아직껏 마음이 찝찝해지곤 한다.
출발은 상쾌했었다. 본회의는 교정본부장의 경우 배우자의 프로그램을 따로 마련해 두고 부부동반으로 참석토록 하였기에 관련 수행원들과 더불어 집사람도 늘 상 출장에 동반하였었다. 시드니를 거쳐 서 호주의 중심도시인 퍼스의 공항에 도착하니, 주 호주 한국대사관 퍼스출장소의 직원이 시간에 맞추어 차를 가지고 우리 부부를 픽업하러 나와 있었고, 회의 장소인 ‘하얏트 리젠시 퍼스 호텔’ 까지 데려다 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 고맙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더불어 서 호주의 푸르고 흰 하늘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싶게 낮게 펼쳐진 모양이 어찌나 이채롭던지, 마치 양탄자처럼 포근하게 이방인의 낯가림을 감싸주는 것만 같아 마음에 흡족했다.
일주일에 걸쳐 진행된 회의에서는 ‘긍정적 성과 창출’과 ‘효과적인 수형자 의료서비스’ 등 두 가지 과제를 두고 각국의 주제발표와 심도 있는 토의가 진행되었고, 또한 이듬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프리맨틀 교도소 등 여러 교정시설들을 두루 시찰하였다. 
호주야말로 유형지로 출발한 대륙인지라, 야만적 형벌과 유배의 체취로부터 인도적 처우의 착근에 이르기까지의 그 모든 행형사적 족적을 내포하고 있다 할 것이니, 감춰져 있는 그 형극의 흔적들을 시찰하는 감회란 과연 남다르지 않을 수 없었다.

1770년 영국의 제임스 쿡이 처음으로 호주에 발을 디딘 이래, 1,788년부터 1,868년까지 약 80년 동안 무려 806회에 걸쳐 영국 본토의 범죄자 16만 2천명이 호주의 광활한 아웃백(outback)으로 추방되면서 식민지로서의 역사 또한 시작되었었다. 
그러나 구금과 강제노역이라는 그 약탈적 지배의 서사에도 불구하고 길고 오랜 세월의 힘을 빌려 기어코 오늘날의 부국을 시현하고 말았으니, 역사의 맥락과 선택을 수긍하고 이해하는 일이란 언제나 어려운 숙제인 것만 같았다.

퍼스의 외곽에 넓게 자리 잡은 농장 교도소를 방문하였을 때 기어코 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해 교도소장이 핸드 프린팅(hand printing) 행사를 한다며 기념관처럼 세워진 건물로 우리를 안내하여 들어섰더니, 핸드프린팅용 찰흙을 담은 반듯한 상자들이 탁자 위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고 그 뒤에는 나라별 작은 국기들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나를 안내한 호주 교도관을 따라 코리아라 표시된 상자를 찾아갔다가 그만 기겁하고 말았었다. 

그 상자 뒤쪽에는 태극기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북한의 인공기가 세워져 있었던 것이었다. 찰나에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니 그제서야 감을 잡은 호주 교도관이 얼른 인공기를 제거하고는 사색이 되어 사죄의 말을 건네 왔다.
그러나 나의 고성으로 행사장은 삽시간에 어수선해 지고 말았다. 교도소장과 본부에서 수행나온 직원이 황급히 다가와, 담당직원이 어제 바쁘게 인터넷을 검색하여 각국의 국기를 찾아 준비하였는데 남북한의 국기를 혼돈 하는 실수를 범하였다고 변명하며 사과했다. 
그리고는 핸드 프린팅을 미리 해두면 나중에 태극기를 찾아서 꽂아 두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흔들며 그 제의를 단연코 거부하고 그 장소를 나와 버렸다. 경솔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업무 태도에 순간적으로 속에 천불이 났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둘로 갈라져 총뿌리를 겨누고 선 나라의 꼴을 그 따위 소꿉놀이 같은 행사에 이르기 까지 되새겨 상처 받을 일은 결코 아니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저녁 숙소에 머물자니 호주 교정본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늘 행사에서 빚어진 결례를 사과할 겸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중히 그 초대를 사양했으며, 대신에 내일 아침 전체 회의시에 모든 참석 회원국 대표들 앞에서 대한민국 국기를 착오한 실수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 발표를 해 주길 요청했다. 

그러자 그는 흔쾌히 나의 제의를 받아들였고, 이튿날 약속대로 그는 모든 회원국들 앞에서, “어제 행사에서 대한민국 태극기를 혼돈한 큰 실수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대한민국 교정본부장님께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실정을 모르는 회원은 없을 것인즉, 모두가 그 사과의 멘트에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 사과를 받고서야 비로소 호주를 주유하며 눈에 넣은 캥거루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아름다운 계단, 그리고 호주의 한여름 메리 크리스마스 모두를 마음 편히 가슴에 담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이태희(전 교정본부장/ 현 사단법인 대한민국 재향 교정동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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