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침과 뜸으로 승부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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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동에 가면 늘 만난 시각장애인 김씨는 나에게 각별한 선생님이었다. 오십 줄에 들어서 녹내장으로 맹인이 된 김씨는 처음에 몇 번인가는 와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조심스럽게 “혹시, 저 같은 사람도 치료가 될 수 있을까요?" 하고 물으며 다가왔다.

“처음에는 물체가 안개에 쌓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전등불을 보면 무지개가 나타나고 하더니 점점 보이지 않더라고요. 이러다 영영 보지 못하게 되는 건지 그걸 알고 싶어요."
그런 증상이라면 청맹관, 즉 만성 녹내장일 터였다. 나는 그가 만성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고 말았음을 알았다. 나는 뜸을 오랫동안 뜨면 청맹관을 고칠 수 있다는 치료 사례가 여러 의서(醫書)에 나와 있음을 김씨에게 알려주면서 치료해 보자고 했다.

김씨와 나는 그 날부터 뜸치료를 시작했다. 효과를 높이기 위해 침치료를 곁들였는데 그러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 날 발등에 있는 태충(太衝)혈에 침을 놓자 김씨가 눈에 푸른 색 기운이 돈다고 했다. 눈을 지배하는 장기(臟器)가 간(肝)인지라, 간을 돕기 위해 간장의 원기가 머무는 태충에 침을 놓았던 것. 

나는 태충(太衝)에 침을 꽂아 푸른색이 나타났다면, 경혈에 따라 관계가 있는 오장(五臟)의 색이 나타날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이번에는 심경의 원혈인 신문(神門)혈에 침을 꽂고는 붉은 색이 나타나느냐고 물었다.
“네. 붉은 기가 보였어요."
그가 약간 흥분한 말투로 대답했다.
나는 오장(五臟)을 잇는 각 경락(經絡)의 원혈에 신속하게 침을 놓았다. 김씨는 폐경의 원혈인 태연(太淵)혈에 침을 꽂으면 흰색이 보인다고 답했고 비경의 원혈인 태백(太白)혈에서는 누런  색이 나타났다고 답했다. 그런데 내가 신경의 태계(太谿)혈에 침을 놓고 무슨 색이 나타나느냐고 물었을 때였다.

"아! 이젠 아무 색도 안 나타나는데요!"
기대에 부풀었던 목소리가 대번에 꺾이며 김씨가 대답했다.
“침뜸 의학에서 신(腎)은 검은 색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세상이 온통 검을 텐데 또 검은 색이 나타나겠어요?"
내가 농담을 섞어 설명해주자 그는 슬그머니 웃었다. 김씨를 통해 내가 다시 배운 것은 침구멍, 다시 말해 경혈이 분명히 존재하며 경락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직 과학적으로 완전히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침과 뜸을 배우고 수십 년 만에 경락과 경혈이 인체 곳곳을 연결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체득하게 된 경험이었다.

구당 김남수 옹의 책 ‘나는 침뜸으로 승부한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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