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향기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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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세상을 한 마디로 규정하자면, 돌려줌과 돌려받음의 관계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메아리의 원리 속에서 굴러가는 사회라 보면 틀리지 않을 듯하다. 진공 속에서는 그런 메아리의 법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거대한 공기 막으로 둘러 싸여져 있어, 역사 이래 지금까지 메아리의 법칙이 한 치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농사를 짓지 않았는데도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지 않았는데도 생선을 먹을 수 있는 것도 다 메아리의 법칙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다 이전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준 것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이 메아리의 법칙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나는 과연 무엇을 돌려주었기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런 혜택을 돌려받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살아간다는 것은 메아리의 법칙을 역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세상에는 돌려주는 것 하나 없이 돌려받기만 하는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갑돌이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면, 언젠가 내가 갑순이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나도 모르는 어떤 사람에게 선행을 베푼 그 값이 되돌아온 것일 뿐이다. 한 푼도 돌려주지 않고 움켜쥐고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영원히 움켜쥐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바로 메아리의 법칙이다.

돌려주어야 할 것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자기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부와 명예와 권력을 쌓아서 산을 이루었다 해도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일은 아니다. 언젠가는 부와 명예와 권력이 한 순간에 무너져 그 자신을 덮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수지 앞에 서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저수지는 물을 가두는 일이 목적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찰랑찰랑 물이 넘치도록 차 오른 저수지를 바라보면 감격에 겨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해야 할 일이다.

강 건너에 메아리가 살듯이 우리 안에도 메아리가 산다. 우리 안에 따뜻한 생각을 던져 넣으면 따뜻한 말이 튀어 나온다. 마찬가지로 밝고 맑은 생각을 안으로 들여보내면 밝고 맑은 말이 술술 나온다. 이와 반대로, 탓과 비난과 증오의 생각을 집어넣으면 넣은 만큼 그런 말이 터져 나오게 마련이다.

메아리는 강 건너에도 있고, 산 너머에도 있고 우리 안에도 있다. 세상 어느 곳을 가나 메아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사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절로 터져 나오는 말이 있다. 바로 감사라는 말이다. 감사의 말이 이른 아침 산사를 깨우는 종소리처럼 우리 사회에 은은하게 퍼져 나오면, 사람들의 가슴은 보다 따뜻하고, 밝고, 맑아질 것이다. 그런 날이 오고 있음을 본다.

노희석 ( 시인/ 서울남부구치소 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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