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교도관 생활에의 회고

‘87년 마산교도소 출정계장으로 근무할 때 변호사 노무현을 처음 마주쳤다. 그 무렵 부산. 마산 지역에서 소위 인권 변호사라 자처하던 사람이라면 김광일. 노무현 등 두 사람으로 대표되었고, 또 그 두 사람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찍이 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던
김광일 변호사가 노무현 변호사를 뒤늦게 그 바닥으로 이끈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주 활동 무대가 부산이었던 터라 마주칠 일이 드물 수밖에 없었는데, 어느 날 법정 내 배치된 직원들의 계호근무 상태에 대한 감독 순시 차 법정 문을 열고 들어서자니, 마침 노무현 변호사가 수임사건과 관련하여 당해 피고인에 대한 변론에 열중하고 있어,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다. 
뜻밖의 첫 마주침에서 엿본 그의 변론은 인상 깊었다. 당시 형사사건의 경우, 대저 피고인의 반성정도나 불우한 가정환경 등을 거론하며 선처를 요망한다는 변소 정도가 결심공판 시 변론의 보편적인 행태였다. 그런데 유달리 헌법 조항 까지 언급하며 부지런하게 변론하는 노무현 변호사의 모습이 참 이채롭고 조금은 촌스럽게 다가들었던 때문이었다.

훗날 5공 청문회 등에서 쩌렁쩌렁하기만 하던 목소리와는 달리 그날 변호하는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가늘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음에도 발언의 내용을 얼른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었다. 그 차분했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훗날 대통령이 되고, 파란만장한 삶의 무게와 시간들로 독특한 서사를 빚으며 역사의 행간 한쪽을 자리할 줄은 그때는 차마 몰랐었다.

교정본부장으로 근무하던 2009년 5월 21일 점심식사 후 순천으로 출발했다. 순천, 군산교도소 등에 대한 감독순시 및 대략 3년 정도를 주기로 시행되는 소별 교정연합회 총회와 유공위원들에 대한 시상 등 격려 행사를 주관하기 위해서였다. 
오후 6시경 시작되는 행사 시간에 맞추어 도착, 행사를 주관한 뒤 이어진 만찬 시간에 각 교정위원들의 자리를 한 바퀴 돌며 술잔을 권하고 또 받고나니 오르는 취기가 만만치 않았었다. 거기에 더하여, 행사를 준비하느라 수고한 순천교도소 직원들을 격려하고자 행사 종료 후 과장급 이상 간부들을 따로 모아 다시 술자리를 가졌으니, 자리를 파할 무렵에는 대취하지 아니함이 이상할 터였다.

숙소로 향하는 차 속에서 잠시 눈을 감고 있자니 수행비서관이 말하길, 순천에는 중급 규모의 호텔이 딱 하나 있는데 특실로 예약해 두었다고 했다. 
호텔에 도착하여 숙박할 방 앞에 이르니 출입문에 ‘노무현 대통령 주무셨던 곳’이라는 글귀가 플라스틱 팻말에 새겨져 붙어 있는 게 유달리 눈에 띄었다. 안내하던 종업원이 “노무현 전대통령이 대통령후보로 선거운동 할 적에 주무셨던 방입니다.” 하고 묻지도 않았는데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는 호텔이 그런 방을 품고 있음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는 듯한 표정을 지어 우리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했다.

특실이라 방은 넓었다. 큰 침대가 두 개나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몸을 씻은 후 잠자리에 들었는데, 상당한 취기에도 불구하고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 몸을 꿈지럭 거리다가 눈을 떠 문득 고개를 돌리니 옆자리 빈 침대의 하얀 시트가 눈에 익숙하지 않았다. 꿈을 꾸는 것인가? 불쑥 느껴지는 푸르고 차가운 기운과 더불어 하얀 시트가 마치 사체를 덮어놓는 영안실의 하얀 덮개 천을 보는 듯 느껴졌다. 
찰나에 모골이 송연해 지고 숨이 가빠왔다. 같잖았다. 셀 수도 없는 많은 출장길, 하얀 시트의 침대 속에 몸을 맡겨 언제나 편히 잠들었거늘, 처음 경험하는 낯설고 불편한 기운 탓에 자는 둥 마는 둥한 그날 밤이 참 길었었다.

이튿날 군산교도소를 순시하고 저녁 늦게까지 어제와 똑같은 행사를 주관하고 나니 이미 오후 10시에 이르고 있었다. 내일이 공휴일이고 시간도 늦었으니 하루 밤 더 머물고, 지방의 인근 명소들도 둘러보고 가시라고 지방청장 및 일선 기관장들이 권유했으나, 사양하고 바로 떠나왔다. 설령 그럴 마음이 있다 한들 어젯밤의 잠자리를 돌아보면 마냥 도리질하고도 남을 터였다.
군산을 떠나 집에 도착하니 새벽 3시경에 이르렀고, 도착하자마자 지쳐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는데, 집사람이 나를 흔들어 깨우고서는 핸드폰을 손에 쥐여 주었다. 눈도 뜨지 못한 채 핸드폰을 귀에 대니, 당직근무자가 숨 가쁜 목소리로 보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답니다. 실국 본부장님들 전부 광화문 별관으로 집합하라는 장관님 지시가 막 떨어졌습니다.”

감전이라도 된 듯 나는 벌떡 일어났다. 운전기사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별관으로 향하는 승용차에서 눈을 감자니 문득 그제 밤 순천의 호텔방 출입문에 붙어 있던 글귀가 떠올랐다. 또한 그날 밤 내 곁을 서성여 몸서리쳐지던 시간들도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한 삶이 저무는 신호가, 날짜와 시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같은 잠자리에 몸을 담근 연유로 하여 감지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별관에 모두 모였을 때, 법무부의 실.국별 대응조치를 검토하라 일러, 서울구치소에 수용되어 있던, 망자의 형 노건평의 구속집행정지 필요성을 건의하였다. 
또한 부처별 실.국장급 공무원들이 날짜와 시간을 나누어 교대로 노대통령의 분향소에 입회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그리 행하였다. 분향소를 지킬 때도 자꾸만 순천의 그 호텔방 출입문이 떠올랐었다.

이태희 (전 법무부 교정본부장/ 현 사단법인 대한민국 재향 교정동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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