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사슬을 끊고 거듭난 류민석 사장의 수기(2)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엄마의 자리가 비어버린 집안에서 누나와 형은 철이 일찍 들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곧장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을 잘 아는 터라 저는 초등학교 육성회비와 급식비, 우유값을 지원해준다는 운동부의 권유에 따라 3학년 때부터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운동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아침 6시부터 8시까지는 새벽운동, 9시부터 11시 30분까지는 오전운동, 오후 1시부터 5시까지는 오후 운동, 오후 6시부터 9시까지는 야간운동. 이런 싸이클로 하루 종일 운동만 했었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을 하게 되었고, 중학교 입학을 앞뒀을 땐 여기저기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을 만큼 실력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영광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운동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우승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폭력에 시달려야 했는지는 감히 상상도 못하실 겁니다. 
한창 예민한 나이인 청소년기에 부당하게 가해지던 끝없는 폭력을 겪으며 점점 지쳐갔습니다. 결국 저는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더 이상은 맞으면서 운동할 수 없다고 선언하며 운동을 그만두겠다 말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운동부 감독님은 저를 놔주지 않았습니다. 대회에서 우승하면 감독 본인의 교사점수가 올라가기에 어떻게든 저를 붙잡으려 물고 늘어졌습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회유와 협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학교를 그만두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판단에 저는 학교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으리라 생각하며 1년 뒤 학교에 복학하였지만 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또다시 시작된 집요한 운동 권유에 지쳐 다시 한 번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저는 동네에서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니는 형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로인해 여러 가지 사건에 연루되고 빠져들어 끝내는 소년원부터 교도소까지 가는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죄성이 너무 짙어져 있었기에 나의 잘못을 제대로 인식조차 못했습니다. 
"누군가를 위협하고 빼앗고 피해주는 행위는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내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는 이런 행동을 당연하다는 듯이 할 것이기에, 나는 전혀 후회 없다. 죄를 지으면 그냥 징역 가서 내 죄 값만 치르면 된다. 나는 당당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들로 10대와 20대의 황금기를 끝없이 교도소를 들고 나며 보내게 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어이없는 일이고 피해자분들이 보시면 분통을 터뜨릴 일이지만, 그 당시의 저는 죄를 짓는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저 법원에 제출하는 반성문에만 반성하는 척 하며, 최대한 형량을 줄이기 위한 도구로만 ‘반성’이란 단어를 사용했었습니다. 돌아보면 그 당시에 제 마음과 머릿속엔 ‘감사’가 들어갈 자리가 단 1%도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니 늘 남을 탓하고, 비난하고, 괴롭게 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겠지요.

가족과의 관계 또한 당연히 파탄이 났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범죄만 짓고 살던 인생이니, 제가 어찌 가족들과 원만하게 지낼 수 있었겠습니까. 
아무리 피를 나눈 가족이지만 가엾어 하는 마음도 한 두 번이지, 10대 때부터 20대 전부를 교도소만 들락날락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렇게 약 10년 동안 가족들과 연락 한번 없이, 면회 한번 없이 살았습니다. 
자연히 연이 끊어진 것이지요.
<다음 호에 계속>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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