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산책

흔히 사람들은 세상은 나 아니면 모두 너라고 생각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게 왜 문제냐고 따지고 든다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너를 너로만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나는 너가 되지 못하고, 너 또한 내가 되지 못하니 그 틈 사이를 갈등의 씨앗이 파고들어 얼굴을 쑥 내밀고 만다.

갈등이라는 녀석은 나와 너 사이를 이간질하고, 다툼을 부채질하는 것이 그의 일이요,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였다가는 갈등의 세계에서 당장 내쫓겨나고 만다. 우리가 넘어야 할 갈등이라는 세계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을 부추겨내려고만 한다. 무조건 있는 사실에다 무엇인가를 보태내려고만 한다. 그 세계에는 빼기나 나누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더하고 곱하는 부풀리기만 있을 뿐이다.

온통 너뿐인 세상에서 혼자뿐인 나. 헤아릴 수없이 많은 너라는 대상들과 겨루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우리를 쉽게 지치게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너를 상대로 나를 지켜내기 위해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영원히 지켜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 아닌 너는 끊임없이 다가오고 또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무 승산도 없는 도전에서 우리,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지키는 삶에서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하는 삶으로 갈아타야 한다. 나를 왜 지켜야 하는지 한 번 물어보지 않고, 내가 무너지면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고 만다는 그런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야 하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끌어올려야 하는 시지푸스의 바위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 냉정하게 묻고 대답해 보자. 나는 누구인가를. 이를 곰곰 따지고 들다보면, 지금의 나는 부모라는 너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부모가 나를 낳아준 가까운 너라면, 부모나 형제 아닌 다른 사람들은 좀 더 먼 너일 뿐이지 않을까. 그런데도 우리는 남이라는 덤터기를 씌워 나로부터 분리해 놓고 만다. 강 건너 불을 보듯 보려고만 한다.

이 세상에 너가 없는 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오로지 너로 인해 내가 존재하는 줄도 모르고. 우리는 너를 나와 떼어놓고 나만 고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당연한 줄로만 안다. 사실 너와 나,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물고 나면 내가 되고 우리가 된다. 내가 되고 우리가 되는 것은 하나가 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나와 너 사이의 갈등은 아침이슬처럼 사라지고 만다. 그 순간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가 깃들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물리적으로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 수는 없지만 의식적으로 너와 나의 경계는 얼마든지 허물 수가 있다. 경계를 허물면 허물수록 사람들은 깨어나기 마련이다. 지역과 이념, 나라와 종교까지 허물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삶과 죽음의 벽까지 허문 사람들은 말 한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그저 무릎 꿇고 오직 감사해야 할 일뿐이라고.

노희석 (시인. 서울남부구치소 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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