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교도관 생활에의 회고

국정감사가 끝나면 여야 의원들과 관계부처 장.차관 및 실.국장들이 자리를 함께하여 서로간의 노고를 토닥이며 폭탄주를 나누기도 하던 세월이 있었다. 
사활을 거는, 피 튀기는 선거만 아니라면 이 짓도 괜찮은 직업이라고 우스개 삼아 되뇌곤 하던 국회의원들과, 생채기에 소금 뿌리듯 자존감을 긁어대는 국정감사만 없다면 장관도 해 먹을 만 하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이들이 같이 모여 나누는 이런 술자리는 드물었으나, 그러나 호쾌했다. 감사장에서의 그 쪼잔하던 역할들과는 전혀 달랐었다.

2009년, 정부 과천청사 법무부 회의실에서 국회 법사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있었다. 해마다 한 번씩 치르는 행사였지만, 애국심을 경쟁하는 의원들의 불편한 눈 부라림과 고성은 여전했고, TV 카메라 앵글이라도 마주하노라면 거의 광적인 극단성에 버금가도록 정의의 표출은 넘쳐났다.
그러나 존중받지 못하는 그 질타쯤에는 기왕에 이골이 난 터이고, 또한 선수끼리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묵묵히 수용하고 견디노라면, 마침내는 봐주고 덮어주는 격려성 질문과 답변이 제 몫의 루틴을 찾아 이루어 졌으며, 이윽고 여느 때처럼 감사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마무리되기 마련이었다.

장관실에서 미리 소통을 해두었던 것인지 감사종료 후 모처럼 뒤풀이가 있었다. 장소는 청사 맞은편 빌딩에 위치한 카페였다. 법사위원장이 폭탄주를 만들어 먼저 한 순배 돌리고 연이어 법무부장관이 폭탄주를 제조하는 등 여러 순배 술잔이 돌아갔다. 
거기에다 한 순배 마다 누군가의 폭탄사가 안주처럼 뒤따르며 마냥 분위기를 북돋우었다. 누구의 마음에도 한낱 부질없는 웃음으로 밖에 와 닿지 않을 경박한 언어의 유희라 할지언정, 나름 페이소스가 묻어 있는 폭탄사들은 연신 돌아가는 술잔과 더불어 좌중에 웃음과 흥을 고조시켜주었다.

“이번에는 교정본부장님이 한 말씀하시지” 실.국장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등 뒤에서 나를 지목해 왔다. 돌아서니 모 의원이 한잔 가득 말아 찰랑거리는 폭탄주를 건네며 짓궂게 웃었다. 까짓것 ! 해야 할 말들을 재빨리 머리로 추스리며 술잔을 천천히 비웠다.
“50여 개의 지방 단과대학을 거느린 국립 교정대학 총장으로서, 최근 당면하고 있는 다급한 현실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생각의 여백을 넓히는 나의 생뚱한 발언에 모두들 고개를 돌렸고, 또한 미리들 미소를 머금었다. 마치 웃을 준비라도 하는 듯 보였다.

“요즘 저는 일선 기관장들이 집합하는 자리마다 우리 국립대학 재학생들의 졸업 후 원활한 사회정착을 지원하는 데 보다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지하고 계시다시피 우리 국립 교정대학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네 명이나 배출하였고, 총선거시 마다 국회의원의 1/4 이상을 차지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서울대학 졸업생들의 국회 진출실적이 가파르게 상승하여 우리 국립대학을 바짝 추격해 오고 있는 실정이라, 각 기관장들에게 특별히 지시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경쟁상대는 서울대학이다.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 우리 학생들의 교정시설 경험치가, 정계진출에 유효한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가일층 독려하라’ 하고.”
좌중에 폭소가 만발하여 좀처럼 그칠 줄 모르는 가운데 질문이 왔다. “대통령 네 명은 누구  누구인가요?”

그래서 일러주었다. 대한제국 시절, 공화정 수립과 고종 퇴위 음모에 가담한 죄목 등으로 한성 감옥에 구금되었었던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 반독재 투쟁으로 오랜 기간 구금되었던 김대중 대통령, 민주화운동 시위로 부산구치소에 잠시 구금되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학생운동으로 구금되었던 이명박 대통령 등을 거론. 설명하니,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던 듯 아! 하고 고개들을 끄덕였었다. 그것으로 말을 마쳤으면 좋았을 것을--.

“어디 그 뿐입니까, 박사 후 과정도 두 명 있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등 두 명의 전직 대통령들입니다.”
말을 하고서는 아차 하고 이내 깨우쳤다. 좌중의 뜨거운 반응과 폭탄주의 취기에 휩쓸려 경박하게 말을 까불고 말았음을. 타인의 인생, 그 시련과 회한을 함부로 희화화 하고 조롱하는 결례를 범한 것임을.
후회막급이었다. 동전에 앞면과 뒷면이 있듯 진실은 언제나 단면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말했거늘, 또한 현실 속에 감춰진 진실이란 늘 뒤죽박죽인 것이라고 들어왔거늘.
내 마음의 찝찝함과는 상관없이 내 발언에 모두들 폭소로 즐기니 그 기분이 묘했다.

“지금 국회의원들 중 그 대학교 출신들은 얼마나 됩니까?"
“지금도 4분의 1 정도는 간신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물음에 대답하니, 그 물음과 대답 모두가 다시 큰 웃음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의 폭탄사는 꽤나 오래 잊히지 않고 법무부 간부들 간에 회자되었었다. 국립 교정대학의 얘기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흥미로움으로 얹혀 지는 듯싶었다.

이태희 (전 법무부 교정본부장/ 현 대한민국 재향 교정동우회 회장)

소중한 글입니다.
"좋아요" 이모티콘 또는 1감사 댓글 달기
칭찬.지지.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