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조 리본 달 일이 없기를

소방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오른쪽 하단에 화재진압복을 입고 소방장비를 갖춘 소방관이 펄럭이는 태극기와 마주하고 있는 사진이 있다. 거기에는 다음 문구가 써 있다.

“당신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 순직 소방관 추모관 바로가기”

클릭하면 화재현장에서 분투하는 소방관 모습이 나타나고 또 다음 문구가 써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의 희생과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부디 천국에서 편히 쉬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그리고 바로 아래 ‘추모의 글 작성하기’를 클릭하고 나면 영정 사진이 나타나 숙연하면서도 울컥해진다. 이 짧은 세상 너무 짧게 살다간 얼굴들을 차마 마주하기가 미안해진다. 그래서 검은 리본을 매단 흰 국화를 보며 눈시울을 적시다가 또 클릭하면 추모의 글을 쓸 수 있다.

“뭐라 표현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마음이 너무너무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신이 있다면 여기 있는 분들이 이제 고통 없는 곳에서 편안한 상태이시기를. 유가족 분들이 이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을 그래도 딛고 이겨나가시길... 국가가 끝까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기를... 마음 깊이 소망합니다. 영면하세요.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다음 세상에서는 이렇게 위험한 일은 하지 마시고 가족들과 못 다한 행복 마음껏 누리세요. 제발 근조 리본을 달 일이 더는 없기를...”

제발 근조 리본을 달 일이 더는 없기를 바라지만, 이 글이 남겨진 순직 소방관의 연번은 428번이다. 즉 428번째 순직자라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故 박수훈 님.’ 순직 당시 연령은 만 35세, 순직일은 2024년 2월 1일, 순직 경위는 ‘공장 화재현장 인명검색 및 화재진압 활동 중 급격한 연소확대로 고립되어 순직’이다.

가장 최근 순직 소방관 추모관에 이름을 올린 故 박수훈 님은 경북 문경시 신기동 신기제2일반산업단지 한 육가공 공장에서 화재 진화 도중 고립됐다가 숨진 소방관이다. 당시 故 박수훈 님과 5∼7m 거리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구조대원 시신 한 구가 또 발견되었는데, 故 김수광 님이다. 처음에는 이들이 동일한 복장을 하고 있어 맨눈으로 신원 확인이 어려운 상태라 DNA 검사를 해야 했다.

故 김수광 님의 연번은 427번, 순직 당시 연령은 만 27세, 순직일과 순직경위는 故 박수훈 님과 같다. 생각만 해도 젊은 나이에 하나뿐인 소중한 목숨을 잃었으니 가족들의 마음은 하늘이 무너져도 수천 번 무너졌을 것이다. 이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이 필요할까?

“하늘에 계신 당신과 같은 영웅이 있었기에 우리는 안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평안함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故 김수광 님에 대한 추모글이다. 이 말밖에 할 수 없는 게 미안하고 미안할 따름이다.

소방관 정신건강 적신호

‘2023 소방청 통계 연보’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119 신고는 총 1254만 6469건으로 2021년 1207만 5804건 대비 3.9% 증가했다. 화재 출동은 같은 기간 10.6% 늘어난 4만 113건에 달했다.

반면에 소방공무원 채용 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2018년 신규 채용 인원은 총 5671명, 2021년 4461명, 2022년 3814명, 2023년 1560명이다. 현장 상황과 다르게 급속히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순직·공상 소방공무원 수는 2018년 830명, 2019년 827명, 2020년 1006명, 2021년 936명, 2022년 1083명, 2023년 1336명으로 늘어나고 있다. 순직자 수만 보면 지난 10년간 40명에 달한다.

크게 개선되지 않는 소방관 환경이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최근 10년간 극단적 선택을 한 소방관이 같은 기간 순직자의 약 3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자료를 보면 더 마음이 아파진다. 2013년부터 2023년 7월 말까지 극단적 선택을 한 소방공무원은 총 126명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소방관 10명 중 4명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 수면장애 문제 등에서 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월 4일 소방청은 지난해 3~5월 소방공무원 5만 28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소방공무원 마음 건강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43.9%(2만3060명)가 PTSD, 우울 증상, 수면장애 등 주요 심리질환 4개 가운데 1개 이상에 대해 관리나 치료가 필요한 위험군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을 1회 이상 생각했다는 소방관은 전체 응답자 중 8.5%(4465명)를 차지했다. 이 중 관리 필요군은 2597명에 달했다.

소방관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소방 환경을 만들려면 여러 특단의 조치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전국소방공무원 직장연합협의회는 잇단 소방관 순직 사건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적극 적용하고 소방인력 충원과 예산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순직 소방관 추모관 순직자 1번은 ‘故 김영만 님’이다. 순직 당시 연령은 20세, 순직일은 1945년 10월 27일, 순직경위는 ‘부산시 부산진구 적기 육군창고 화재진압 중 폭발물 폭발사고로 순직함’이다. 고인은 부산중부소방서 소속이었고 1925년생이다.

매일 끊이지 않는 화재 현장을 볼 때마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들어갔다가 가장 나중에 나오는 소방관들의 사투를 떠올리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제 모든 조건들이 좋아져서 더는 그분들의 순직이 없기를 바란다. 그래서 ‘故 박수훈 님’의 428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란다. 꼭 그러기를 바라며 이에 미리 감사드린다. 감사합니다.

김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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